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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된 민사소송 판결문에 나오는 사실관계는 다른 재판에서 그대로 사실로 인정될 수 있을까.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당사자가 증거로 제출하지도 않았고, 이 법원이 심리하지도 않은 다른 판결에 나오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해 판결한 것은 원심의 법리 오해”라며 사건을 광주지법 합의부로 파기환송했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1999년 B씨에게 2억원의 약속어음을 빌려줬다. 약속된 기한까지 어음금을 갚지 못한 B씨는 A씨에게 자신이 대표이사인 C사의 일부 자산권을 위임하기로 각서를 썼다. 이후 C사는 A씨에게 2억 2000만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공증인가까지 받았다.
A씨는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그만 C사가 해산해버렸다. 어디서도 돈을 받지 못한 A씨는 1999년 설립돼 B씨의 인척이 운영하며 B씨가 이사로 있던 D사에 B씨가 갚지 않은 돈을 돌려달라며 양수금(채권을 양도받은 양수인이 채무자에게 채권 이행을 청구하는 것)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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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사는 빚 갚지 않으려 만든 회사” 주장한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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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C사는 빚을 갚지 않으려고 가족을 동원해 D사를 설립하고 영업용 중요 자산 일체를 양도했다"고 주장했다. C사와 D사가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여서 D사가 채무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이란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D사가 1999년 설립됐고 ^현재 대표이사가 B씨의 배우자이며 ^C사가 2000년 사실상 해산된 점 ^C사와 D사의 본점 소재지 주소가 동일한 점 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점만으로는 D사가 C사의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설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D사가 C사의 영업용 자산을 대부분 이전받았다거나 직접 고용을 승계한 직원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서다. 1심은 A씨가 D사로부터 B씨에 대한 채무를 받을 수 없다고 보고 A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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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법원은 달랐다. 2심은 D사가 실질적으로 C사와 동일한 회사고, B씨가 빚을 갚지 않기 위해 회사 제도를 남용했다고 봤다. 2심은 "A씨는 C사뿐 아니라 D사에도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2심 법원은 D사가 과거 제3자와 민사 소송을 내서 승소 확정을 받은 판결문의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이 판결문에는 "B씨가 C사를 운영하다가 자금 압박을 느끼자 같은 장소에 D사를 설립했고, C사 채권자들을 피하기 위해 B씨의 친인척을 통해 D사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적혀있었다. 또 다른 판결문도 인용했다. 이 판결문에도 "D사의 대표는 B씨로부터 영업을 양수한 게 아니라 경영관리를 위임받은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2심 법원은 이런 사정을 근거로 "C사와 D사는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라며 "D사가 A씨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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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증거제출 안 된 다른 하급심 판결 그대로 인정한 것은 위법"
A씨는 빚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은 또 뒤집어졌다. 대법원이 2심 판결에 법리적 오해가 있다고 보면서다. 대법원은 "D사와 제3자 사이에 있었던 민사 확정판결 존재를 넘어 그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까지 이번 사건의 현저한 사실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통상 관련된 다른 민사 확정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이 유력한 증거가 되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배척할수 있다는 법리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심이 인정한 다른 하급심 판결문들이 실제 이번 사건에서는 증거로 제출된 적도 없고, 당사자들이 이를 주장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심에 법리 오해가 있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ㆍ판단하라고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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