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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리뷰]지금, 우리가 ‘체르노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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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HBO 5부작 미드 <체르노빌>이 국내에 상륙했다.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플레이는 지난 14일 오후 <체르노빌>을 단독 공개했다. H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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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미국 케이블 방송사 HBO의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이 국내에 상륙했다.

1986년 4월26일 발생한 우크라이나(당시는 소비에트 연방 소속)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이 작품은 <브레이킹 배드>, <플래닛 어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을 제치고 세계 최대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서 관람객 평점 9.6점을 획득하면서 ‘역대 최고 평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오는 9월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에미상에서 최우수 미니시리즈상을 포함해 19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5월 미국 방영 이후 참사 현장인 체르노빌을 찾는 ‘다크투어리즘’이 늘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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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이 연구소 옥상에 올라 검은 연기에 휩싸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를 바라보고 있다. H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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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체르노빌 참사 2년 뒤인 1988년 모스크바에 있는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체르노빌 사건에서 정상적인 건 없었다. 거기서 일어난 일련의 과정은 옳은 일조차 전부 다 광란이었으니까.” 사고 당시 원인 조사를 담당한 위원회를 이끌었던 레가소프는 부엌 식탁에 놓인 카세트 녹음기 앞에 앉아 폭발 사고 전후 과정과 이후에 일어난 은폐된 진실에 대해 털어놓는다. 녹음을 끝낸 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척 밖으로 나온 그는 폐건물 안으로 녹음테이프를 던져 넣는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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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이 체르노빌 참사의 신속한 수습을 위해 체르노빌로 향하며 석탄부 장관을 스쳐지나고 있다. H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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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시 참사 당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유령도시’가 된 프리피야트의 한 아파트. 폭발 소리에 잠에서 깬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는 “걱정할 일 없다”며 가족을 안심시킨 뒤 현장으로 향한다. 같은 시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가 넋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곁에 선 다른 직원들도 얼이 나간 건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방사능 계측기조차 제대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댜틀로프가 소장에게 사고의 위험성을 축소해 보고하는 사이 소방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발전소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윌 곰퍼츠 BBC 아트 부문 편집장은 <체르노빌> 리뷰에서 별 다섯의 만점 평점과 함께 이같은 시청소감을 남겼다. 관료들은 끊임없이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거짓말을 반복한다. 이 와중에도 일부 과학자들은 원인을 밝히려 애를 쓰고, 광부들은 “국가적 위기”라는 말에 희생을 감수하고 체르노빌로 향한다. 이같은 아수라장 속에 주민들은 누출된 방사능이 공기를 이온화 시키며 만든 ‘오로라’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아이들은 떨어지는 방사능 재를 맞으며 눈 만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닌다. 체르노빌 참사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면, 현재 진행형인 비극의 결말을 알기 때문에 더 괴롭다.

재난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들이 적지 않지만 <체르노빌>이 유독 찬사를 받는 건 연출의 ‘건조함’ 때문이다. <무서운 영화 3>, <슈퍼히어로>, <행오버2> 등 코미디 영화의 각본을 주로 써온 각본가 크레이그 마진은 웃음기를 완전히 빼고 사건의 재구성에 집중한다. 예상치 못한 반전, 눈물샘 자극하는 휴머니즘 대신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밀도 있게 쌓아가며 “거짓의 대가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의 모습은 과장해 표현하지 않아도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실제 당시 사진과 언뜻 구분이 되지 않는 뛰어난 고증 또한 몰입감을 높인다.

지난 8일(현지시간) 러시아 해군 훈련장에서 ‘제2의 체르노빌’을 우려하게 만드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바라보는 전세계의 시선도 불안하다. 모두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지금, <체르노빌>이 전하는 경고의 울림은 그래서 더 묵직하다. 레가소프는 마지막 녹취를 이렇게 끝마친다.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건 거짓을 계속 듣다 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에 대한 일말의 희망마저 버리고 지어낸 이야기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플레이가 지난 14일 공개를 시작했다. 회당 평균 60분가량이며 15세 이상 관람가.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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