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뮤지컬 ‘시라노’에서 사랑의 정경은 낭만적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의 모티브가 된 프랑스의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벨쥐락’(1897)이 원작이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콤비 프랭크 와일드혼과 레슬리 브리커스의 2009년 작품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뛰어난 검술로 자신만만하지만 크고 볼품없는 코에 대한 콤플렉스로 인해 정작 본인의 사랑에는 소극적인 시라노가 주인공. 지적이고 당차며 아름답기까지 한 록산 앞에만 서면, ‘사랑 바보’가 된다.
더구나 록산은 자신이 이끄는 가스콘 부대에 신입으로 들어온 크리스티앙을 사랑한다고 그 앞에서 고백을 한다. 그런데 뛰어난 외모의 크리스티앙은 언변과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다.
결국 시라노는 크리스타앙의 입과 펜이 돼 준다. 그의 꿀 같은 사랑의 말들이 크리스티앙을 통해 록산에게 대신 전해지고, 록산과 크리스티앙은 결국 결혼에까지 이른다.
시라노의 머리와 마음의 행간에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친다. 록산과 크리스티앙 사이에 하트 시그널이 놓이지만, 시라노 주변에는 스산한 바람이 분다.
가스콘 부대가 최전방에 파견돼 전투를 벌일 때도 시라노는 매일 밤 크리스티앙 몰래 그를 대신해 편지를 써 생사를 넘나드는 포위망을 뚫고 편지를 록산에게 보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보는 또는 듣는 이의 상상에만 존재할 것 같은 짝사랑 이야기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해 사랑의 표식을 곳곳에 남기는 오늘날의 풍속도로는 이해를 못할 법도 하다.
하지만 ‘시라노’는 공감을 하게 만든다. 시라노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둥그런 달이다. 달은 지혜, 비밀, 낭만 등을 상징하는데 그 모든 것이 시라노에게 응축됐다. 그런데 사랑 앞에선 그의 눈 안에서는 태양이 떠오른다. 달 그리고 별이 그에게 준 선물이다. 록산이 그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이 있는 하늘나라로 가기 직전이다. 객석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늘어난다.
공연 내내 달빛 같은 농밀한 음표 더미가 귀에 달라붙는다. 시라노의 ‘나 홀로’를 비롯해 넘버들을 듣고 있노라면 갑갑했던 사랑에 대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2017년 국내 초연을 했고 2년 만에 돌아온 이번에는 작품의 개연성도 높아졌다. 크리스티앙이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록산을 구해주는 장면 등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록산에게 빠지는 이유도 더 수긍이 간다. 록산은 사랑스런 외모뿐만 아니라 여성 문학지를 만들 정도로 진취적이며, 검술 실력까지 갖춰 스스로를 지킬 수도 있다. 캐릭터의 공감대를 현 시대상을 반영해 높였다.
캐릭터들의 매력을 높이는 것은 역시 배우들이다. ‘레 미제라블’ ‘빨래’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지연은 록산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반짝반짝 빛이 난다. 대학로의 떠오르는 신예 나하나가 록산을 번갈아 연기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시라노 역들의 배우들도 빠질 수 없다. 13일 무대에서 록산의 박지연과 호흡을 맞춘 시라노 조형균은 ‘록키호러쇼’ 등에서 광기 어린 개성적인 연기를 펼쳐냈는데, ‘똘끼’는 가져오되 낭만적인 모습도 충분히 보여준다. 이 작품의 프로듀서까지 맡은 류정한 외에 조형균, 최재웅, 이규형은 이번에 새로 시라노로 합류한 이들이다. 최재웅은 연기, 이규형은 센스적인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들이어서 각자 호감도를 올리고 있다.
김동연 연출도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했는데, 개연성을 높이는 한편 무대에도 변화를 줬다. 지난 국내 초연이 정적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경사를 지닌 턴테이블 무대를 도입, 동적인 장면 변화와 함께 다양한 무대 연출을 꾀할 수 있었다. 가스콘 부대의 군무 신도 역동적으로 변했다.
이런 배우 호연, 무대 연출은 힘겹지만 콤플렉스를 끌어안고 그 너머에 있는 영혼을 통해 사랑받고 사랑할 용기를 보여주는 데 수렴된다.
업그레이드란 이런 것이다. 눈과 귀에 대한 만족도를 끌어올릴 뿐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황홀경도 넓혀야 한다. 이번 ‘시라노’는 마음을 울리는 강도도 세졌다. 재공연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관객의 심리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일임을 ‘시라노’는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CJ ENM과 손잡고 프로듀서로 데뷔한 류정한은 고심의 흔적을 완성도로 보여줬다. 10월1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realpaper7@newsis.com
▶ 뉴시스 빅데이터 MSI 주가시세표 바로가기
▶ 뉴시스 SNS [페이스북] [트위터]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