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41)
어둠을 헤치며 야간 산행에 나선 사람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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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산행
사위는 풀벌레 소리에 귀잠 들고
생동하는 청록과 숨죽인 회색을
구분 못 하는 두 눈
거친 숨소리 겁먹은 발바닥
어두운 육감은 오로지 두 귀에 쏠려있다
어디로 이끄는지 몰라 답답한
시간의 벼랑을 틈새 삼아
한 번도 읽어보지 못 한
바람의 발자국 소리를 껴안는다
쪽잠에서 깬 까치도 흔들리는 시간
입 다문 산 위로 축성하는 별들에게
길을 묻듯 날아오른다
균열의 칼날이 부딪혀 오른 정상
길 잃고 허공을 어루만지고서야
내 어둠의 구석이 어딘지 제대로 보였다
빈 하늘의 무게에 엎드린 산을 따라
재연된 모호함 속에 마음을 더듬고
잠시라는 품에 안긴들 부끄러움이 아니다
■ 해설
아메리카 인디언이 말을 타고 달려가다 가끔 내려 달려온 길을 한참 바라보는 것은 너무 빨리 달리느라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 px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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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타고 먼 길을 갈 때 결코 단숨에 달려가는 일이 없다고 한다. 달려가다가 가끔 말에서 내려 지금까지 자신이 달려온 길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긴다고 한다. 그러고는 다시 말에 올라 목적지로 향하는 인디언. 그 이유는 앞만 보며 너무 빨리 달려가느라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 오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란다.
여기서 인디언들이 말하는 영혼을 굳이 종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자기 조상이나 가족, 종족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모든 자연 만물이 영적인 존재로서 긴밀히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을 말한다. 각자가 세상과 하나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신의 위치와 삶의 역할을 되새긴다는 뜻이다. 고난에 낙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과 인내의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터넷으로 세상이 하나로 연결된 현대인에게는 종교를 논하지 않아도 이런 정신은 쉽게 이해가 된다.
중국의 임제선사는 “길을 가는 도중이라도 평상시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했다. 이 말의 뜻은 “올림픽 정신은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인식한 대로 언제 어디서나 같은 각오로 살아가는 걸 말한다.
야간 산행은 시야가 제한되어 오로지 산행에 집중할 수 있다. 불평이나 객쩍은 수다도 준다. 그래서 야간 산행의 묘미에 한번 맛 들이면 깊이 빠져든다. [사진 px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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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밝은 낮에 주로 이루어지지만, 코스가 길거나 먼 지방 산행일 때는 무박산행이라 하여 밤중에 산을 타게 된다. 야간 산행은 시야가 제한되어 오로지 산행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험한 코스라도 위험성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비교적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다. 야간 산행 후에 낮에 같은 코스를 타보면 과연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코스를 탔었는지 의아심이 들기도 한다. 산행대장이 훌륭하면 산행시간도 무척 단축된다. 야간 산행 때는 동반자들이 집중하여 불평이나 객쩍은 수다도 적게 된다. 그래서 야간 산행의 묘미에 한번 맛 들이면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넘어지거나 길을 잃는 등 뜻하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머리에 쓴 랜턴 빛이 흔들리며 앞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걸을 때 온몸의 감각이 온통 청각에 집중되는 걸 느낀다. 특히 적막한 밤인지라 왼발, 오른발 규칙적인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청각은 다른 감각보다 쉽게 몰입감에 이르게 한다. 몰입감은 분열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감정적, 육체적 에너지 소모도 적어진다. 어떤 행동에 큰 성취감을 준다. 그래서 정신집중이나 몰입상태(flow)로 이끌 때 눈을 감고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나 메트로놈 소리를 들려주곤 한다.
몰입상태에서는 맥박과 호흡이 편해져 시간이 느려지고 나와 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체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피로감을 덜 느끼며 일의 능률도 올라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된다. 아마도 인디언들은 이런 몰입상태를 영혼의 챙김이라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호흡과 맥박이 가빠지고 불규칙하게 되어 감정이 흥분하는 걸 삼갔다.
몰입상태에서는 맥박과 호흡이 편해져 시간이 느려지고 나와 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체험을 한다. 정신 집중을 해야할 때 청각은 다른 감각보다 쉽게 몰입감에 이르게 한다. [사진 pxhe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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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에 랜턴으로 길을 비추다가 가끔 나무 위에서 잠자고 있던 새들을 깨우게 되면 푸드득 하고 놀라 일제히 빈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럴 때 사람도 함께 놀라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비로소 총총히 박힌 수많은 별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목적과 수단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직장에 나가 노동하는 걸 좋은 집을 마련하고 남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일과 노동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나가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을 한낱 수단으로만 여기게 된다. 일과 삶을 분리하여 자신의 삶이 목적인 경우가 드물게 된다.
우리는 산행을 해도 남보다 얼마나 빨리 정상에 도착하는가가 자랑거리가 되곤 한다. 그런데 야간 산행 때는 이상하게도 그런 경쟁심이 사라진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평소보다 줄어든다. 서로를 배려하게 되어 쉬어도 함께 쉬고 힘들어도 비슷하게 속도를 낸다. 자칫하다가는 불의의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 정복이 아니라 산길을 함께 걷는다는 의미가 뚜렷해진다.
어두운 야간 산행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잘 못 헤아렸던 자신의 어둠이 어디서 근원했는지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어둠 속으로 빠져보는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된다.
야간 산행처럼 우리가 일하는 것 자체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 되지 않으면 인생은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매사가 각박해진다. 일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마치 달팽이가 제집을 등에 업고 걸어가는 것처럼,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도중에 목적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그런 것이 영혼의 길일 것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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