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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전후세대 첫 일왕 나루히토 "깊은 반성"···아버지 길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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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반성위에 서서, 전쟁의 참화 반복 안되길"

나루히토 일왕 종전일 추도사, 아버지와 같아

"아버지 아키히토가 걸어온 길 아들 추모사에"

아베 추도사는 "역사의 교훈 가슴에 새겼다"

일본인들이 ‘종전일’이라고 부르는 15일 태평양 전쟁 패전일을 맞아 일본 언론들이 가장 주목한 건 지난 5월 즉위한 나루히토(德仁) 일왕(일본에선 천황)이 내놓을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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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일왕이 15일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마사코 왕비와 함께 출석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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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후 세대’ 일왕이 처음으로 참석하는 ‘전국 전몰자 추도식’이 그 무대였다.

그의 아버지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현재는 상왕)은 전쟁의 책임을 외면하는 정치가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동안 ‘오코토바(お言葉)’로 불리는 종전일 추도사를 통해 반성의 뜻을 밝혀왔다.

뚜껑을 열고 보니 나루히토 일왕의 메시지는 아키히토 상왕의 지난해 추도사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15일 오전 11시 50분부터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나루히토 일왕은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깊은 반성과 함께’가 ‘깊은 반성위에 서서’로 바뀌는 등 작은 표현의 수정은 있었지만 지난해 아버지의 추도사와 거의 같았다.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은 패전 70주년이던 2015년 추도사 때부터 아키히토 상왕이 새로 넣은 것이다.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한다’는 부분은 지난해에 새롭게 추가된 부분인데, 나루히토 왕은 이 모두를 그대로 따랐다. 전쟁 책임 이외의 추도사 나머지 부분도 표현만 조금 손봤을 뿐 지난해 추도사와 의미가 달라진 대목은 없었다.

지지 통신은 “상왕이 쓰신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답습하며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냈다”고 해석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들은 아버지 아키히토 상왕의 영향에 주목한다. 아키히토 상왕의 경우 식민지 침략과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은 주변국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헤이안 시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속일본기(續日本紀)의 기술을 거론하기도 했고, 2005년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인 위령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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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明仁) 상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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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상왕의 '절친' 중 한 사람이 '한·일간 화해'에 천착하다가 지난 2월 별세한 언론인 마쓰오 후미오(松尾文夫)였다. 아키히토 상왕이 그와 함께 한·일 관계를 걱정했다는 전언도 있다.

이런 분위기가 나루히토 일왕의 추도사에서 그대로 묻어난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일본 유력지의 논설위원은 "그동안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일본 국민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루히토 천황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추도사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쟁의 책임이나 반성의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1993년 이후 역대 총리들이 사용해 왔던 “아시아 제국의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표현은 2차 아베 내각 발족 후인 2013년부터 7년째 빠졌다. 이번엔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기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을 쏟아왔다"는 언급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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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일인 15일 도쿄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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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추도사는 역대 총리들이 ‘부전(不戰ㆍ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의 맹세’를 분명히 밝혀온 것과도 차이가 있었다.

그는 ‘부전의 맹세’라는 직접적 표현을 피하는 대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간접적인 표현만 썼다.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이 ‘맹세’는 쇼와(昭和), 헤이세이(平成), 그리고 레이와(令和)의 시대에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에도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역사를 겸허히 마주 보고,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그 결연한 ‘맹세’를 관철해 나가겠다”고 했다. ‘왜 부전의 맹세를 아베 총리만 하지 않느냐’는 논란이 부담스러워 비슷한 표현을 교묘하게 엮는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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