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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ICT 입찰담합
담합 유형은 다양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 합의, 거래상대방 제한, 거래조건 합의, 사업활동 제한 등 8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입찰담합은 비교적 최근(2007년)에 별도 유형으로 구분된 영역이다.
공정위는 입찰담합을 별도 유형으로 구분한 이유에 대해 “종전에 가격 담합, 공급제한 담합 등으로 규율함에 따라 초래되는 법 적용상 혼란을 방지하고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나 물자조달에 입찰담합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입찰담합이 주로 적발되는 업종은 건설업이었다. '4대강 사업'에서 이뤄진 대대적 담합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2012년 담합에 참여한 건설사에 총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ICT 분야 입찰담합 적발 사례가 두드러진다.
통신, 소프트웨어(SW), 로봇 등 분야도 다양하다. 올해 공정위가 적발한 주요 입찰담합 사건 6건 중 4건이 ICT 업종이다. 작년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사례만 5건 이상이다. 공정위가 별도 발표하지 않거나 처리 중인 사건, 미적발 사례 등을 포함하면 실제 ICT 업계에서 이뤄지는 입찰담합은 훨씬 많다는 게 업계 평가다.
◇새로운 시장서 '짬짜미'…발주처가 담합 유도하기도
공정위가 공개한 주요 사건 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ICT 분야 입찰담합은 '단독응찰에 따른 유찰방지'가 배경이 되는 사례가 많았다.
공공입찰에서 입찰 참가자가 하나 밖에 없어 기업 간 경쟁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입찰은 유찰된다. 추가 입찰에서도 한 차례 더 유찰돼야 수의계약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사업은 한참 뒤로 밀린다. 수의계약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면 기업으로선 담합의 유혹이 더 커진다. 첫 입찰에서 사업 경쟁력이 없는 들러리 기업을 참가시켜 유찰을 막고 자사가 손쉽게 낙찰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ICT 분야에서 '단독응찰에 따른 유찰방지' 사례가 두드러지는 것은 산업 특성상 새로운 시장이 많이 생겨나는데 아직 해당 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이버견본주택 입찰'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사이버견본주택 제작 입찰에서 담합한 마이다스아이티, 비욘드쓰리디, 킹콩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해당 사건 의결서에서 “사이버견본주택 제작 시장이 활성화 되지 못했고 LH가 주도하는 공공분양 입찰시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서 “소규모 입찰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이를 주요 사업으로 삼으려는 신규 사업자가 많지 않은 점은 이 사건 입찰담합의 주요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사업 지연을 우려해 발주처가 담합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공정위가 지난 2월 적발한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입찰 사건'에서 이런 정황이 포착된다. 공정위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발주한 ERP 시스템 입찰에서 담합한 메타넷인터랙티브와 에코정보기술을 적발했다. 그런데 담합 배경으로 발주처인 한수원의 '유찰방지 요청'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공정위는 해당 사건 의결서에서 “발주처인 한수원도 재입찰 뿐 아니라 향후 발주 예정인 입찰도 단독응찰로 유찰될 것을 우려해 피심인 관계자를 통해 프로젝트 수행기간 내 사업이 정상적으로 완료될 수 있도록 유찰방지를 요청했다”고 적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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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업계 “수익성 때문에…구조적 문제도”
ICT 업계는 공공입찰의 경우 '최저가 낙찰' 등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가 담합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분석했다. 최저가 낙찰제를 포함한 입찰 제도상 문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정보보안시스템 도입 입찰에서 이뤄진 시큐릭스, 링크정보통신 간 담합을 2017년 적발했다.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된 해당 입찰에서 '수익성'은 담합에 영향을 미쳤다.
공정위는 의결서에서 “시큐릭스는 해당 입찰에서 낙찰되더라도 이익률이 크지 않아 입찰 참여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링크정보통신과 만나 시큐릭스가 낙찰 받을 수 있도록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발주하는 IT 사업 대부분 예산 자체가 적게 잡혀 있다보니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담합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면서 “업체 간 공정 경쟁을 할 있도록 입찰 하한가를 현행 80%에서 95%까지 올려주는 노력이 동반돼야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ICT 분야 입찰담합이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한편, 제도·시장환경 개선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도 올해 업무계획에서 “입찰담합 사건처리 과정에서 발견된 발주처의 제도적 문제에 대해 관계부처와 제도개선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도적 문제의 대표 사례로 △불필요한 입찰자격 제한으로 인한 투찰사업자 제한 △담합이 용이한 입찰 방식 △유찰방지를 위한 담당자의 묵시적 담합 요청 등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ICT 분야 입찰담합이 확산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ICT 경쟁력을 유지·제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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