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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사실확인]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무리한 버스운행은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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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여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을 달리던 관광버스가 앞서가던 K5 승용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심하게 찌그러진 차량에서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는데,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광역버스가 앞서가던 K5 승용차를 깔아뭉개 2명이 숨졌습니다.

이번에도 버스 운전기사는 "깜빡 졸았더니 앞바퀴 밑에 승용차가 깔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버스는 승차 인원도 많은 데다 차체도 다른 차량보다 높습니다. 사고가 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집니다.

무리한 운행에서 비롯된 졸음운전 사고를 막겠다며 지난달 1일부터 버스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습니다. 전에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돼 주 68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주 52시간까지만 버스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버스기사의 무리한 노동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며 52시간제 도입이 필요한 까닭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버스기사의 무리한 근무는 정말 사라진 걸까요?



17시간째 근무하다…승객 태우고 운행 중 쓰러져 사망

주52시간 도입이 무색하게 얼마 전 한 버스기사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경기도 지역의 60대 버스기사 김 씨가 운행 중 쓰러져 숨진 겁니다.

김 씨의 마지막날 운행일지를 확보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 봤습니다.

당일 김 씨의 출근은 지난달 8일 새벽 4시였습니다.

타이어와 버스 내부를 점검하고 청소를 마치고, 새벽 4시 40분 첫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경기도 평촌에서 광명까지 왕복 52km, 정류장 137곳을 거쳐서 차고지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휴식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노선을 왕복하기를 5차례 반복하던 김 씨는 첫차 운행 17시간째인 밤 9시 40분쯤, 경기 안양시의 한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는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승객이 놀라 신고했습니다. 김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숨졌습니다.

김 씨는 교통모범 활동도 하는 60세의 건강한 버스기사였습니다.



하루 18시간 근무해도 '주 52시간'…격일제와 대기시간의 함정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는데 어떻게 하루 17시간 넘게 근무를 했는지입니다.

버스회사의 근무 형태를 살펴봤더니 역시 일반적인 사무직 회사와는 달랐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온종일 일하고는 밤늦게 퇴근을 하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그 대신 다음 날은 쉽니다. 김 씨의 회사도 비슷했습니다.

평일과 주말 관계없이 단순히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인데, 이 방식을 '격일제'라고 합니다. 버스기사들끼리는 '퐁당퐁당'이라고도 부릅니다.

예를 들어 보면 A조가 일할 때 B조가 쉬고, B조가 일할 때 A조가 쉽니다. 이러다버니 회사들은 버스 100대가 있다면 기사는 200명만 뽑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 인건비로 최대 효율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퐁당퐁당'을 하는 식으로 근무시간은 주52시간으로 맞춰집니다.

하지만 버스기사들은 '대기시간'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기시간이란 한차례 버스 운행을 마치고는 다음 운행까지 15~30분가량 남는 시간을 뜻합니다. 취재진이 접촉한 버스기사들은 대부분 이 시간 동안 연료(CNG 가스)를 충전하고 차량 내부를 청소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기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대법원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된 버스회사 대표에 대한 재판에서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버스기사들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판결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기시간을 빼고 다시 계산하면 2주에 104시간, 그러니까 주 52시간을 잘 지키는 것으로 계산되지만,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근로시간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주60시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휴식시간도 없는데 5시간 쉬지 않고 운행"

하루 18시간을 근무하는 등 일하는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긴 상황, 주52시간 도입의 취지 중 하나였던 졸음운전 방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취재진은 버스기사 김 씨가 사망한 A노선 등 경기도의 버스 노선 4곳을 직접 타 보며 왕복 시간을 재 봤습니다.

A노선(52km)과 B노선(62km)은 왕복 3시간 20분, C노선은 4시간 20분(89km), D노선은 4시간 30분(103km)이 걸렸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5시간까지 걸린다고 버스기사들은 말했습니다.

운행 중 따로 정해진 중간 휴식은 없었습니다. 이러다보니 회차 지점에선 각각 차량을 세워놓고 황급히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신호에 걸리면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는가 하면, 운전대에 쓰러져 잠을 청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졸려 죽겠다" "졸지 말라"는 말이 기사들간의 안부 인사가 될 정도였습니다.

비공식적으로 화장실도 가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쉬엄쉬엄 운행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어 이 부분도 살펴봤습니다.

시내버스에는 '인가 운행횟수'라는 게 있는데, 쉽게 얘기하면 어떤 노선에 하루 몇 차례 버스를 투입할지 정해놓은 겁니다. 이 운행횟수를 잘 맞추는지에 따라 지자체에서는 '운행준수율'을 관리·감독하고, 이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기도 합니다. 회사들은 당연히 이걸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운행횟수를 잘 맞추려면 보통 2개의 방법이 있습니다. 주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었으니 버스기사를 더 고용하는 게 첫번째, 1회 운행시간을 짧게 편생해 주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두번째입니다.

버스기사를 더 뽑는 건 회사 입장에선 부담이 되는 상황, 이러다보니 운행시간을 짧게 편성하는 방법을 많이 쓰게 됩니다. 3시간 30분이 걸리는 노선을 3시간 5분 만에 들어오도록 배차하는 식입니다. 기사들은 시간을 맞추기위해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을 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그래도 안전운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버스기사는 "주52시간을 못 지키면 회사가 결딴이 난다. 우리도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엄도영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버스지부 사무국장도 "주 52시간을 맞춰놓고 제한된 시간 안에 인가횟수를 다 돌아야 하는데, 이 사실을 이용하려는 버스 사업장들이 있어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취재결과를 종합해보면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기권의 버스 노선들로 한정하면 주 52시간 도입 이후에도 단순히 52시간만 지켜질 뿐 과로 운전은 크게 변한게 없다고 판단됩니다.

과로 막을 조례 있지만…대안은 예산 확충

취재진은 과로운전이 여전하다고 판단내리고, 버스기사들의 현실을 바꿀 방법은 없는지도 추가로 살펴 봤습니다.

우선 과로 운전을 막을 장치의 유무에 대해 확인해 봤습니다. 관할 지자체인 경기도는 조례를 통해 운전기사의 '(하루) 기본 운행시간'과 '최대 운행시간'을 공표하도록 하고 있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별 효력이 없었습니다.

설령 공표를 한다해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커 보였습니다. 열악한 처우 탓에 버스기사 지원자 자체가 적은 상황에서 최대 운행시간을 공표한다면 버스 운행을 대폭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통 대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경기도 관계자도 "기사들의 과로를 막기 위해 제정됐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공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대안으로 보이는 것은 '1일 2교대제'였습니다. 실제로 서울 등 버스 준공영제가 잘 정착된 지자체는 하루 9시간씩 운전하고는 오전조와 오후조가 교대하도록 근무 형태를 바꿨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운전할 기사를 추가로 뽑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돌고돌아 해법은 또 예산이었습니다.

[ 손하늘 기자 / sonar@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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