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 국어사전을 옆에 두는 버릇이 있다. 모르는 단어를 찾을 때 보다는 익히 쓰고 있는 단어의 원 뜻을 찾을 때 자주 사용한다. ‘좋아하다’의 뜻을 찾아본다. ‘애정하는 마음을 느끼다’. 그렇다면 ‘애정’의 뜻을 찾아본다. ‘사랑하는 마음’. 어쩐지 돌고 도는 것 같긴 하지만, 사랑의 기시감 정도로 사전에선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좋다’라는 말이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사를 하다 보면 수식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꾸밈말을 많이 끌어내 버릇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 향기가 뒤섞이듯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떡이 진다. 그럴 때면 느끼하게 뒤섞인 음식이나 문양만 화려한 그림을 닮은 알맹이 없는 글이 나온다. 매끈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사전을 보면 중화작용이 된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든, 본디 그 단어에게 주어진 역할은 따로 있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일수록 의외로 원 뜻을 말하라 하면 어렵다. 하얀 도화지 상태의 단어의 모습은 때로는 낯설기까지 하다.
단어를 하얀 도화지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 쉽게 오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의 의미가 퇴색돼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목격한다. ‘치유’라는 신성한 뜻의 ‘힐링’은 한때 거대한 유행을 타 온갖 상업적인 곳에 갖다 쓰이다 급기야는 불법 마사지 시술소로 추정되는 선정적인 전단지에 ‘힐링 마사지’로 등장했다. 잦은 빈도수로 사용된 단어 힐링에 일부 사람들은 피로도를 느끼게 됐고, 이제는 무성의하게 사용되는, 다소 겸연쩍은 클리셰(예술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오염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너무 속이 상했던 말들도 있었다. 바로 ‘진지함’과 ‘감성’이다. ‘태도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라는 훌륭한 의미의 ‘진지하다’는 말은 이제는 ‘진지충’이라는 말로 더 익숙하다. 감성적 글을 쓰거나 표현을 할 때에는 ‘감성충’이라는 놀림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런 말들은 농담처럼 쓰이지만 파괴력이 굉장하다. 듣는 이에게 미미한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수치심이 차라리 아주 거대하다면, 무례하다며 반격이라도 할 수 있지만, ‘농담’이라는 악의적인 포장지에 싸인 말이라 그럴 수도 없다. 씁쓸한 무안함과 함께 내심 진지함과 감성을 자제하게 되는 기억은 그렇게 쌓여간다.
그러고 보니 감성은 어떤 의미인가. 찾아보니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이란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자면 감성이 부재한 인간은 사이코패스라 해도 무방하다. 진지충이라는 말은 정도를 외치고 표준을 지키려는 자들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감성충이라는 말은 사소한 행복이나 누군가를 안쓰럽게 여기는 연민의 감정을 제거한다. 이 표현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마도 진지한 감성충, 즉 끔찍한 혼종이 되겠다.
나부터도 오염된 언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낄낄대며 버릇처럼 쓰던 말의 기원을 알고 뜨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뜨끔했을 때 멈추지 않은 말은 기생충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 안의 무언가를 무감각하고 오작동하게 만든다. 옷차림 하나에 행동이 달라지는 마당에 매일 쓰고 사는 말인데 오죽하겠는가. 욕설 하나 비속어 하나 쓰지 않는 걸어 다니는 표준어 사전이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영혼을 갉아먹는 오염된 단어로부터는 나를 지켜야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알고 있고 느낌을 알지만, 또 한 번 언어로 풀어내자면 어려운 말들이 있다. 사랑한다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남을 이해하고 돕다’ 등 여러 뜻으로 풀이되지만, 가장 좋아하는 풀이는 내가 쓰는 사전에서 본 ‘애틋이 그리는 마음’이다. 단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저마다의 우주가 있고 생명력이 있다. 바른말 고운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시로 단어들에게서 먼지정도는 털어줘야겠다.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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