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 들머리에는 고대인들의 암석 주거지가 있다. 대략 4층짜리 아파트 높이인 이 주거지는 방이 여러 개 있고 방마다 번호가 있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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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을 모험의 세계로 이끈 영화는 오랫동안 회자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영화가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인디아나 존스 박사의 모험을 그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다. 그 첫번째 영화인 ‘레이더스’가 개봉한 해는 1981년이다. 40여년 전 개봉한 영화에 견줘 지난해 국내 개봉한 다섯번째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 격세지감을 느낄 만도 한데, 영화는 개봉 첫날 흥행 2위를 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디아나 존스 키즈’들이 건재한 것이다. 이들에게 영화 속 유적지는 ‘인디아나 존스’로 빙의해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에스시(ESC)가 튀르키예 고대 유적지들 중 하나인 아나톨리아 여행을 추천한다. 튀르키예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유적지만 21곳이나 있다. 이 중 아나톨리아야말로 실제 여러 나라의 ‘인디아나 존스 박사’들이 출동한 데다.
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 들머리에는 고대인들의 암석 주거지가 있다. 대략 4층짜리 아파트 높이인 이 주거지는 방이 여러 개 있고 방마다 번호가 있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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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500년 내용증명, 이혼서류
튀르키예 중부에 있는 아나톨리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명들이 피고 진 땅이다. 인류 최초 도시로 알려진 ‘괴베클리 테페’가 건설된 곳도 이곳이다. 히타이트, 셀주크, 오스만 등 이름도 낯선 제국들이 호령했던 땅 아나톨리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많은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합종연횡하며 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아나톨리아’가 품은 뜻은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말 ‘아나톨레’에서 유래된 ‘아나톨리아’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이다. 농경·정착 생활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 유적지 차탈회위크(선사시대)뿐만 아니라 히타이트 왕국(청동기시대), 프리기아 왕국(철기시대) 등 고대 국가가 세워졌던 아나톨리아.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과 로마가 점령했던 땅 아나톨리아.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기 직전까지도 이슬람국가 오스만 제국이 지배했던 땅이 아나톨리아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숭고한 인류의 문명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근사한 고고학 여행지를 만들었다. 이 지역 여행의 출발지는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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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6일(이하 현지시각) 앙카라에 도착했다. ‘튀르키예’ 하면 이스탄불이 대표 도시로 알려졌지만, 실제 튀르키예의 ‘소울’(영혼)은 수도 앙카라에 있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Anadolu Medeniyetleri Müzesi)이 앙카라에 있기 때문이다. 이날 아나톨리아 여행 안내자로 나선 관광가이드 아이발라 괵수는 첫 만남에서 뜬금없이 한국의 배구 선수 김연경을 언급했다. “튀르키예 말을 너무 귀엽게 해서 잊히지 않는다.” 김연경은 2011년부터 6년간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에서 뛰었다. 괵수는 여느 튀르키예인들처럼 친절하고 우정을 영글게 하는 데 세심하다. “우리(튀르키예)는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한다”고 자부심도 드러냈다.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실내.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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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한 유물이 전시된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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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와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도착했다. 1881년 화재로 방치됐던 건물을 튀르키예를 세운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8년 복원하기 시작했다. 작업은 1968년까지 이어졌지만, 개관은 그보단 25년 앞선 1943년께 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 시대별 유물이 차례로 전시돼 있고, 각 시대마다 당대를 지배한 제국의 웅장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늘어진 젖가슴, 팔보다 두꺼운 종아리, 어둑한 표정, 짐승의 얼굴이 새겨진 의자 팔걸이 등이 한데 어우러진 조각상 앞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되고야 만다. 시커먼 얼굴색 때문에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하지만 ‘죽음’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이 조각상은 농업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상(키벨레)이다. 아나톨리아 남쪽 코니아(콘야)에 있는 유적지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의자 팔걸이에 새겨진 두 마리 표범은 강한 힘을, 다리 사이에 있는 둥근 것은 신생아나 위엄 있는 조상의 두개골을 상징한다.
튀르키예 앙카라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전시된 여신상. 이 여신상은 일명 ‘키벨레’라고 불리는데, 아나톨리아 남쪽 코니아에 있는 유적지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됐다. 박미향 기자 |
화려한 금 장신구, 정교한 항아리, 동물 문양 조각품 등 과거의 물건들이 말을 건다. 손바닥만 한 진흙 평판 수십개가 전시된 유리 전시관 앞에선 고개가 갸우뚱거리게 된다. 괵수의 설명에 눈동자가 커졌다. “채무 이행하라는 내용증명서, 이혼서류, 집 담보 증명서 등입니다.” 진흙덩이가 종이 대신으로 쓰인 것이다. 괵수는 “쐐기문자, 다른 말로 설형문자라고 하죠.” 기원전 3500년께 등장한 인류 최초의 문자다.
박물관엔 고대인들이 흙판을 종이처럼 사용한 문서들도 전시돼 있다. 문서는 이혼서류, 집 담보 증명서 등이다. 박미향 기자 |
히타이트 왕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물인 이난드크 꽃병. 박미향 기자 |
‘히타이트 섹션’에 접어들면 여신상, 왕과 왕비의 우표 인쇄물 등 고색창연한 유물들을 만나는데, 그들의 뛰어난 손재주에 반하고 만다. 히타이트 왕국은 기원전 1750년부터 기원전 1200년까지 아나톨리아 지역을 통치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유물이 이난드크(İnandık) 꽃병이다. 히타이트 왕국의 여러 가지 의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꽃병에는 결혼식 장면이 묘사돼 있다.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전 700년까지 위세를 떨친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에서 발굴된 유물 중엔 지금도 해독이 안 되는 문자가 새겨진 석회석이 있다. 수십개의 동전과 거대한 석판까지,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인 유물을 모아둔 ‘그리스 로마 섹션’도 볼거리다.
‘앙카라 칼레시’에 있는 요새에서 노을을 감상하는 관광객.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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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칼레시’ 안에는 마을이 형성돼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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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칼레시’ 안에 있는 요새.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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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칼레시’.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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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 시장에서 만난 튀르키예 상인.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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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역사 여행 목록에 ‘앙카라 칼레시’(Ankara Kalesi, 앙카라 성채)도 있다. 12세기에 세워진 ‘아슬란하네 자미’(Aslanhane Camii, 아슬란하네 모스크)와 구불구불한 골목, 우람한 요새를 품고 있는 여행지다. 해 질 녘 도착한 요새엔 낭만이 간절한 이들이 모였다. 노을은 로맨틱한 감상을 부른다. 해가 서서히 붉은 기운을 토해내고 달아났다. 여행객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노을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치는 요새 한곳에 사랑 고백에 나선 청년이 보였다. 그가 여자 친구를 맞는 장면은 ‘로맨틱 영화’의 거장 리처드 커티스 감독 작품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의 고백이 성공했을까. 부디 그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성채를 내려왔다.
고르디우스 매듭, 알렉산드로스 흔적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지. 아직도 발굴은 현재 진행 중이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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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지. 아직도 발굴은 현재 진행 중이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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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적지. 튀르키예 관광가이드 아이빌라 괵수가 안내를 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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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가 애피타이저라면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 ‘고르디온’은 첫번째 본식이다. 앙카라에서 차로 대략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고르디온은 ‘미다스의 손’, ‘고르디우스의 매듭’ 등 유명한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유적지는 언뜻 보면 황량하다. 인디아나 존스 일행을 집어삼킨 모래바람이 금세라도 일 듯 보였다. 큼지막한 벽돌 모양의 돌, 너른 집터 등 고스란히 남은 발굴 현장이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튀르키예 관광가이드 아이발라 괵수가 고르디온에 있는 ‘미다스왕의 고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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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왕의 고분’ 안.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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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왕의 고분’ 안.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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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서 차로 10여분 가면 ‘미다스왕의 고분’에 도착한다. 프리기아 왕국의 왕 미다스(기원전 740~기원전 700년께)는 그리스 로마 신화 ‘황금 손’의 주인공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잘 대접해준 대가로 미다스왕이 받은 상은 ‘닿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손’이었다. 하지만 딸마저 금덩어리로 변해버리는 불행을 겪자, 자신의 탐욕을 반성하고 디오니소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치곤 신의 심술도, 질투도 없는 이야기다. 그의 고분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돌로 다진 복도를 지나자 그가 안치된 방에 당도했다. 미다스왕의 유해는 굵은 나무로 짠 방에 있고, 그 공간은 나무와 쇠로 엮은 벽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또다시 어디선가 싸늘한 바람이 이는 듯했다. 수천년 전 아나톨리아를 호령했던 그의 목소리가 바람이 돼 여행객을 맞는 것인가.
바로 인근에 있는 고르디온 뮤지엄에선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리기아 왕국의 각종 유물을 포함해 고르디온 유물들이 연대순으로 전시된 박물관이다. 박물관 한쪽 벽에 용맹스러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고르디온은 1950년 고고학자 로드니 영의 지휘로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실제 튀르키예의 많은 유적지 발굴이 미국, 독일 등 서구 고고학자들의 손으로 진행됐다. 괵수는 “우리 에스키셰히르에 있는 아나돌루 국립대학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차로 대략 2시간30분 가면 도착하는 유적지 고르디온에 있는 박물관. 왕국의 유물을 포함해 다양한 고대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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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 전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고고학·인류학 박물관이 후원한다. 고르디온이 상징하는 고고학적 자산은 크다. 4천년에 걸친 고대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기원전 3000~기원전 1200), 철기시대(프리기아 왕국, 기원전 12세기~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해 시작된 헬레니즘시대(기원전 4세기~기원전 1세기 후반), 로마시대(기원전 1세기 후반~서기 5세기 후반), 셀주크시대(1~14세기 초)로 이어지는 방대한 서사가 뿌리내린 땅이다. 그중 하나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미다스왕과 그의 부친 고르디우스는 자신들이 탔던 우마차를 복잡하게 꼰 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었다. 이 매듭을 푸는 자만이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333년 고르디온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 얘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매듭을 풀려 했으나, 쉽지 않자 칼로 잘라버렸다. 어쩐 일인지 승승장구하던 대왕은 점차 패색이 짙어진다. 고르디온 인근 시브리히사르 마을 돌산에 노동자, 소설가, 예술가 등을 형상화한 조각품들이 있다. 이곳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도 있다.
고르디온 인근 시브리히사르 마을 돌산에 전시된 노동자, 소설가, 예술가 등의 형상.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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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온 인근 시브리히사르 마을 돌산에 전시된 노동자, 소설가, 예술가 등의 형상.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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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온 인근 시브리히사르 마을 돌산에 전시된 노동자, 소설가, 예술가 등의 형상. 튀르키예 관광가이드 아이빌라 괵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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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본식은 고르디온 서남쪽에 있는 아피온카라히사르와 코니아(콘야) 여행이다. 아피온카라히사르는 미식 축제가 열린 정도로 ‘맛있는 도시’다. 하지만 유적지 여행엔 이 지역 인근 아야지니 마을이 제격이다. 지난 9월29일 이 마을을 찾았다. 본격적인 마을 여행에 앞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데는 큰 구멍이 여럿 뚫린 산처럼 큰 암석이었다. 구멍 안으로 들어서자 정교하게 꾸며진 동굴집 모습이 드러났다. 10~12세기에 응회암을 깎아 만든 비잔틴교회다. 옆에도 이와 유사한 모양의 고대 암석 주거지가 있었다. “4층짜리 건물인 셈인데, 방마다 번호가 있어서 마치 아파트 같죠.” 괵수가 말했다. 블랙핑크 로제가 여행 왔다면 ‘고대 유적지’ 버전 ‘아파트’가 탄생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바위 조각 무덤도 있다. 생과 사는 한몸이다. 이 일대는 프리기아제국 때부터 인류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 들머리에는 고대인들의 교회가 있다. 교회 안 모습.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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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 들머리에는 고대인들의 교회가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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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지니 마을 건물 사이에 걸린 일명 ‘악마의 눈’으로 불리는 부적 ‘나자르 본주우’.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 부적이 불운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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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자 아늑한 골목에 게으르게 노는 개가 보였고, 집과 집 사이를 이은 줄엔 일명 ‘악마의 눈’으로 불리는 아나톨리아 전통 부적 ‘나자르 본주우’(nazar boncuğu) 수십개가 걸려 있었다. 유리 재질 원형 판에 짙은 파란색과 옅은 하늘색, 눈이 그려진 부적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악마의 눈’이 불운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악마는 인간을 타락시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런데 왜일까. ‘나자르 본주우’에 갇힌 악마가 힘이 가장 세기 때문에 다른 악마들이 이 부적을 보자마자 도망친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나자르 본주우’ 천지다. 조무래기 악마 따위는 발붙일 수 없는 나라가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 들머리에는 고대인들의 암석 주거지.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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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평화로운 이 마을은 ‘한 달 살기’에 맞춤해 보였다. 부티크 호텔 ‘에인절 베코스’도 있고, 소일하기 좋은 동굴 카페도 있다. 어디선가 큼큼한 냄새가 났다. 마을 사람들은 아편이라고 했다. 이 마을이 속한 ‘아피온카라히사르’의 앞 글자 ‘아피온’은 아편을 뜻한다. 튀르키예 최대 아편 생산지가 아피온카라히사르다. 본래는 ‘아피온’이라 불렸다. 2004년 ‘아편’이 강조되는 게 부담스러웠던 의회는 ‘검은 성’을 뜻하는 ‘카라히사르’를 지명에 붙였다.
빛 드리워진 세계유산 모스크 5곳
코니아의 대표적인 유적지 차탈회위크에는 고대인들의 거주지를 재현한 집이 몇 채 있다. 죽은 가족을 집 안에 안치한 풍습이 재현돼 있는 모습.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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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아의 대표적인 유적지 차탈회위크에는 고대인들의 거주지를 재현한 집이 몇 채 있다.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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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여행지는 코니아의 대표적인 유적지 차탈회위크였다. 2012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958년 제임스 멜라트와 데이비드 프렌치 등이 처음 발견한 유적지는 1961년부터 4년간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땅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졌다. 차탈회위크는 8000여명이나 거주한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하지만 수명은 짧았다. 괵수는 “기생충 감염 등으로 남자는 30살, 여자는 35살을 넘기지 못했다”며 “어르신이 없는 도시”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도 없고, 경쟁도 없었던 사회”라고 덧붙였다. 실제 차탈회위크 사회는 완벽한 고대 평등사회를 이뤘다고 한다.
코니아의 대표적인 유적지 차탈회위크. 박미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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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슬람 연구자로 손꼽히는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는 30여년간 이 유적지 연구에 매진한 영국 고고학자 이언 호더의 말을 인용해 강의한 적 있다. 내용은 이렇다. 모든 집의 규격이 비슷하고, 행정관서 등 권위적인 건물의 흔적이 안 보인다는 것. 위계질서나 계층 분화가 없고, 만장일치제였으며, 남녀 간 차별도 없고 그들 간 노동 강도의 차이도 없는 공동 육아 체제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도 폭력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도 했다.
당시 집을 재현한 건물 여러 채에 들어서자, 이 교수의 강의 내용이 이해됐다. 집과 방의 크기는 거의 같았다. 제일 먼저 지붕으로 난 사다리가 보였다. 지푸라기와 진흙을 섞어 만든 집들 사이엔 도로가 없었다고 한다. 짐승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붕이 문 역할을 한 것이다. 벽에 그려진 야생동물 그림, 집 안에 묻은 사람 뼈 등이 오로라보다 신기해 보였다. 발굴 현장이 노출된 공간에도 갔다. 돔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돔 가장자리엔 걷기 편한 좁은 길이 있다. 그곳에선 파헤쳐진 흙더미, 차곡차곡 쌓은 둑과 표시표가 내려다보였다. 눈을 살포시 감아봤다. 이곳저곳에 웅크리고 있을 인디아나 존스들이 보였다. 그들의 환희가 느껴졌다. 괵수는 “아직도 (발굴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코니아 여행의 백미는 메블라나 박물관이다. 신비주의 이슬람교 종파 수피즘의 철학자 ‘잘랄루딘 루미’(1207~1273)가 이곳에 묻혀 있다.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 이름이 ‘메블라나’다. 여행객이 북적대는 박물관 마당 한쪽에 특이한 석조 조각상을 만났다. 작은 그릇 여덟개가 위부터 아래로 1-2-3-2 순으로 붙어 있고, 맨 아래에 큰 그릇 하나가 박혀 있었다. 맨 위 작은 그릇이 자신, 그 아래 두개의 그릇은 자신과 결혼한 타인, 그 아래 세개 그릇은 자식을 포함한 가족, 다시 두개가 된 그릇은 자식을 보내고 남은 부부를 의미한다. 그 아래 큰 그릇은 결국 마지막을 기다리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한 문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이 알고 보면 그저 평범한 개인사일지 모른다.
여행의 마지막, 디저트는 전 지역에 퍼져 있는 모스크 탐방이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아나톨리아 모스크 5곳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베이셰히르 에슈레포을루 모스크, 시브리히사르 울루 모스크, 카사바쾨이 마흐무트 베이 모스크, 아히 셰레페딘 모스크, 아피온카라히사르 울루 모스크 등이다. 모두 하이포스타일 목조 모스크다. ‘하이포스타일’은 큰 건물 내부에도 기둥 여러개를 세워 지붕을 지탱하는 건축방식을 말한다. 이곳들 중 두곳과 ‘앙카라 성채’에 있는 모스크 ‘알라에틴 자미’를 둘러봤다. 모스크 풍경은 대부분 비슷했다. 창살 밖에서 환한 빛이 어둑한 안을 비췄다. 빛은 한참을 놀다 나갔다. 천주교 묵주처럼 무슬림의 기도를 돕는 도구인 수브하가 기둥 아래 있었다. 고통을 털어놓는 기도가 조용히 퍼졌다. 실내를 감싸는 건, 오직 침묵뿐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나’가 아나톨리아에서 목도한 ‘과거’는 고요하지만 수다스러운, 단조롭지만 풍성한 잊히지 않을 ‘대화’였다.
아나톨리아(튀르키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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