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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일)

김기림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통일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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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인용 '새나라 송' 김기림 시인..48년 시 ‘통일의 부침’서 하나된 나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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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하여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19.08.15. pak7130@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의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인용된 한 시인 김기림이 화제다. 문 대통령은 김기림 시인을 호명하지 않고 한 시인이라고만 밝혔지만 납북 시인으로 한동안 잊혀졌던 김기림의 흔적과 문학사적 위상과도 맞물린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키워드로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다"며 이렇게 인용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를 자신의 시 '새나라 송(頌)'에서 꿈꿨던 김기림 시인은 모더니즘 시인으로 6.25 때 납북 후 사망했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고 말기에는 그의 시세계는 깊고 깊었다. 함경북도 출신 김기림은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문학이론가다.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는 구절로 유명하고 교과서에도 실렸던 시 '바다와 나비'도 그의 작품이다.

해방 직후 김기림은 좌파 계열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이후 사망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사망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납북으로 알려졌지만, 월북 문인이라는 이유로 학술논문에서 이름 표기도 제대로 되지 않다 1988년 해금됐다.

좌익 쪽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한때는 금기의 시인이기도 했지만 김기림은 본래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는 작품도 남겼다. 그가 1948년 4월 발표한 시 ‘통일의 부침’은 남북한이 각각 독자적 정부를 만들고자 할 때 민족 통일의 의미를 역설한 작품이다.

“우리는 본시 하나이었다./ 뼈저린 채찍 아래서도 끌어안고 견디던 하나이었다./ 소리소리 지르면 저절로 반항의 합창이던/ 눈물어린 망향의 쓴 잔도 함께 나눈/ 오! 둘도 모르는 하나이었다.”

지난 3월 문학사상을 통해 김기림의 통일의 부침 등 미발표시를 발굴.소개한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1948년 당시 김기림의 앞에는 해방 공간에서 '계급의 시인'이 되는 길과 '민족의 시인'이 되는 길이 나누어져 있었고, 김기림은 '민족의 시인'이 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기 위한 국민적 역량이 커졌고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며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한반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목놓아 희망하고 울부짖었던 시인 김기림도 ‘우리는 본시 하나이었다. (중략) 오! 둘도 모르는 하나이었다’고 그 나라의 미래를 71년전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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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기림 시인




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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