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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에 폭우가 쏟아졌다. 천천히 걸으면 비에 젖지 않는다. 3D카메라 동작감지센서가 인체를 인식해 신호를 보내면 강우밸브가 잠긴다. 주변에선 장대비가 내리는데 내 위로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아 마치 신(神)이 된 기분이다.
그러나 서두르는 순간에 곧바로 장대비에 젖게 된다. 3D카메라 동작감지센서가 빠른 속도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관객참여형 미디어아트 전시 '레인룸'의 메시지다. 인간의 기술로 인공강우까지 만들어냈다고 자축하지만 오히려 기계 눈치를 봐야 비를 맞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독일 작가 듀오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 플로리안 오트크라스(44·사진)는 "처음엔 관람객이 비를 통제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빗방울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라면서 "점차 기계화되는 세계를 인간이 어떻게 헤쳐나갈지 작품을 통해 고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고 묻자 "여러 답이 존재한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은 기계화된 세계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를 통제하는지, 기계가 우리를 통제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계화되는 세상에 대한 경고이지만 관람객들은 빗속 유희를 즐긴다. 머리 위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탄성을 지르고, 빨리 걷다가 비를 좀 맞아도 웃는다. 2012년 런던 바비칸센터 첫 전시 후 201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2015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 2015년과 2018~2019년 상하이 유즈뮤지엄, 2018년 아랍에미리트 샤자예술 재단, 올해 호주 무빙이미지센터 자카로프 아트컬렉션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관람객들이 비 한 번 맞겠다고 긴 줄을 섰다. 한국 레인룸 전시는 7번째이자 랜덤 인터내셔널의 국내 첫 전시다.
오트크라스는 레인룸 열풍에 대해 "처음부터 재미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시를 여러 곳에서 진행했는데 매번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오랫동안 가뭄이 이어진 LA에서는 부모들이 6~9개월 아이를 데려와 비를 느끼게 해줬다. 전시장이 마치 동물원처럼 비를 구경하는 자연환경 체험장이 됐다. 100년 전만 해도 인공강우는 꿈이었는데 현실이 됐다. 지구 환경이 파괴되면 신선한 바닷물과 바람, 공기를 경험하는 체험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뉴욕 MoMA에서는 레인룸을 환경 프로젝트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관람객들이 좋아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많이 올렸으면 좋겠다."
세계 유명 미술관에 폭우를 내린 레인룸은 4년에 걸쳐 완성됐다. 2008년 5초 만에 프로젝트를 구상했지만 실제 전시장에 설치하기까지 난관이 많았다. 3D카메라 동작감지센서가 빛을 반사시키는 소재 옷을 입은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했고, 방수 시설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는 "바비칸센터에서 전시할 때 '절대 누수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전시장 밑에 콘서트홀 백스테이지와 BBC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비를 업그레이드해 오차를 줄여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현대미술관 천장에 설치된 인공강우판은 물을 뿌리는 강우밸브 1568개, 3D카메라 동작감지센서 8개로 구성됐다. 정수한 수돗물 4t을 물탱크에 넣어 순환시켜 사용하며, 1분당 물 500ℓ가 쏟아진다. 바닥에 쏟아진 물은 정수해 재활용한다. 오트크라스는 "하루에 물 5~10%가 증발해버려 다시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그와 함께 랜덤 인터내셔널을 결성한 한네스 코흐(44)는 개인 사정으로 내한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영국 브루넬대에서 엔지니어링 디자인을 공부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98년 브루넬대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죽 협업하고 있다. 당시 캠퍼스에 독일인은 우리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남들이 커플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붙어다녔다."
작업할 때 호흡을 묻자 그는 "우리는 완전히 정반대 성향을 갖고 있다. 죽일 만큼 미워하지 않는 게 협업 비결이다. 서로 자질을 존경하고 서로 단점을 보완하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답했다.
듀오명을 랜덤 인터내셔널로 정한 이유는 국제적(International)으로 닥치는대로(Random) 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부산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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