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상흔 ⑦·끝] 대일항쟁기 위원회 해산되고 강제동원 현지조사 '0'
“츠가댐 강제동원 실태조사 반드시 정부가 해야할 일”
일본 시코쿠 고치현 시모도 지역에 있는 츠가댐 건설을 맡은 호리우치구미(堀内組)업체 코미노노(古味野々)출장소에 합숙하고 있던 작업자 인구조사표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이 확인된다. 뉴스1이 입수한 조사표.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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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일본 시코쿠 고치현에 있는 츠가댐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규모와 명단을 가늠할 수 있는 인구 조사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8월 14일 보도)된 가운데 정부 차원의 현지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번 인구 조사표는 기업의 토목건축 현장으로 끌여간 조선인의 흔적을 발굴할 수 있는 희귀 자료다. <뉴스1>이 단독으로 입수한 5장 분량의 인구 조사표는 한국 정부도 이제까지 공식 입수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이를 토대로 츠가댐의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조사해야 하지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은 쪼들리는 연구 예산으로 현지 조사는커녕 일본 측에 홍보할 대일항쟁기 위원회의 활동 보고서 번역 작업도 겨우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진상을 규명하는 정부차원의 연구 동력이 상실된 것이다. 2015년 국무총리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자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 위원회(이하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부터다.
일본 시코쿠 고치현 현지에서는 '하타제미'라고 하는 일본 고교생과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1990년부터 츠가댐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기념비까지 세웠다. 이들의 활동은 29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츠가댐 평화기념비 건립 10주년 행사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방문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헌화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인 한국 정부는 츠가댐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일항쟁기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연구진들은 연구 공백기에 처한 현실을 '국가적 손실'로 규정하고 강제동원 피해자 진상 조사와 연구를 가능하게하는 조직과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은 상대방이 아닌 우리부터 되새겨야 할 말이라는 일침도 나온다.
◇츠가댐 인구조사표에 남은 강제노역 흔적…“현지 실태조사 반드시 정부가 해야할 일”
인구조사표는 2004년 고치현 다이쇼촌 서고에서 발견된 이후 일본의 일부 지역 언론에서 다뤄진 적이 있으나 조사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조사표는 일본 내각통계국이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관리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국민징용령 대상자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의 결과물로 추정된다.
조선인들은 국민징용, 관(官)알선, 할당모집 등 3가지 루트로 강제노역을 당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정부는 유용하게 쓸 만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군 공사장에 배치되는 조선인만 국민징용 형태로 끌고가고 관(官)알선이나 할당모집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기업에 넘겼다. 책임 부담과 비용을 덜기 위해서였다.
특히 토목건축 관련 기업은 필요한 공사 현장에 노동력을 이동시키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명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런 만큼 터널 공사나 댐 공사를 하다 재해로 사망한 조선인의 시신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조사표를 토대로 명부에 적힌 피해자의 유족을 찾거나 조사표에 딸린 전체 피해자 명부(기류부)를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긴 셈이다.
대일항쟁기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던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박사는 "인구조사표를 토대로 정부차원에서 연구진을 꾸려 츠가댐 현지 실태조사를 시행할 필요성이 충분하다"며 "반드시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재정난 시달리는 '강제동원 실태 연구'…현지조사 꿈도 못꾼다?
2015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연장되지 않으면서 대일항쟁기 위원회는 해산됐다. 이후 위원회 업무가 행정안전부 과거사업무지원단으로 넘어왔고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이 맡고있다.
하지만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은 기획재정부의 빠듯한 예산 책정으로 인해 2014년 설립된 이후 단 한번도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유해가 남아있는 현지에 연구진을 파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 예산은 지난해까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었다. 재단의 연도별 예산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0억, 2017년 38억, 2018년 37억원 상당의 예산이 편성됐다. 조사연구 사업의 경우 2016년에는 예산 항목에서 아예 배제됐다. 2017년에는 3200만원, 지난해에는 5000만원 편성되는데 그쳤다.
올해는 54억원 정도로 증액됐지만 유해봉안과 추도순례, 위령제 등 '눈에 보이는 결과'에 예산 대부분이 투입되다 보니 연구사업은 뒷전으로 밀려왔다. 재단은 지난해 5000만원의 예산으로 연구용역 2건을 진행했고 올해는 1억원으로 늘려 겨우 5건의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또 유해봉안과 위로금 지급을 위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유족 정보를 제공받으려 해도 과거사관련 업무지원단과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 신청서나 명부 같은 기존 피해조사 자료를 공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 관계자는 "대일항쟁기 위원회가 발간한 연구용역보고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발간 사업도 그동안 예산부족으로 쪼개기 발간을 하고 있었다"며 "인건비도 320개 공공기관 가운데 최하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 예산이 조금 올라간 상태지만 예산 감축에 대한 압박은 여전하다"며 "유해봉안이나 추모제도 객관적인 연구조사 결과를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데 기존에 남은 데이터만으로 하려다 보니 다양화할 수 없고 연구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넣는데도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부, 강제동원 피해조사 전문성 결여…“흩어진 연구인력 견인해야”
대일항쟁기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연구진들은 강제동원 피해조사연구 업무를 넘겨받은 행안부 산하 과거사업무관련지원단과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에 실질적인 연구인력이 없고 전문성이 약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행정 공무원으로만 이뤄진 조직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때 작성된 문서를 해석할 수 있는 한자 이해력도 떨어지고 심지어 위원회에서 이관해 준 문서파일을 찾고 열어 보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핵심 연구자들은 위원회 해산조치 이후 각자가 홀로 강제동원 진상조사를 위한 연구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개정안도 대일항쟁기 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재설치 하는데 그친다.
정 박사는 "정부 차원에서는 현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역사와 관련된 실질적인 연구를 못하고 있다"며 "더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아래 진상조사나 피해조사 업무를 법으로 못하게 막아놓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김민영 한일민족문제회장은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진상 조사와 희생자 연구가 사실상 공백기"라며 "2015년 당시 위원회가 문을 닫으면서 10여년동안 종합한 연구성과를 집대성하는 마무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의 연구와 조사가 단절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근 한일관계도 새로운 퍼즐을 맞추고 찾아가는 과정인 만큼 연구인력을 계속해서 견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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