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2 (토)

법안소위, 한명만 반대해도 `보류`…만장일치 관행에 하세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낮잠자는 법안, 한숨쉬는 기업 ⑤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위를 왜 하느냐? 한 명만 반대하면 되는데 그냥 가서 반대하면 되지'라는 말을 들을 때 굉장히 무안합니다."(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게 양날의 칼입니다.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한테는 부담스러운 관행일 수도 있지만 또 그 자체가 대한민국 국회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관행 중의 하나입니다."(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지난 3월 25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비금융 관련 소관법률을 심사하는 소위에서는 때아닌 '관행' 논쟁이 벌어졌다. '만장일치'라는 법안소위 공통의 관행에 대해서 두 의원 사이에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안소위에서는 참석한 의원이 모두 찬성해야 가결이 이뤄진다. 세부적인 법률 조항 하나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안의 심사를 틀어막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1명만 반대해도 법안은 '계류' 딱지가 달리고 만다. 실제 이날 회의에선 여야 의원 10명이 참석해 4시간여 동안 32개 법안을 심사했는데 가결된 법안은 단 3개였다. 이후 정무위 소위는 무려 150일간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만장일치 관행'에 대해서 국회 입법조사처가 다른 해석을 내놨다.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상임위 법안소위 의결 방식' 보고서에 따르면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의결 방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해석됐다.

보고서는 "법안소위 의결 방식은 국회법 제57조7항에서 위원회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위원회의 의결정족수와 관련해서는 국회법 제54조의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즉 법적으로는 다수결의 원칙이 맞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법안소위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하는 위원이 있으면 의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13대 국회 이후 자리 잡아 온 '협의에 입각한 국회운영의 관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법적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실제 법안소위에서 표결로 처리된 건은 18대 국회 이후 7건 있었다. 지난해 5월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제계 상황을 우려해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에선 개정안의 통과가 추진됐는데, 이에 대해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홀로 반대했다. 정의당 의원들이 나서서 소위 회의장을 찾을 만큼 반대가 격화한 상황에서 타협이 어렵자 소위는 이를 '거수 표결'로 처리했다.

당시 정의당과 노동계가 반대했지만 만약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지 않았다면 경제계 전반은 물론 중소상공인 등의 적잖은 타격이 예상됐다.

물론 다수결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개별 문제점들을 막는 데 만장일치가 더 효과적이다. 10여 명이 소위에 들어가는 만큼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개개인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수긍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 작업 없이 표결에 부치면 부결되고 만다.

2010년 2월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병역법 개정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만장일치'의 폐해가 지적되는 것은 특정 개인의 의견이 법안 처리를 틀어막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각 상임위에서 법안을 받아 이를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2소위가 대표적이다. 단적인 사례가 2018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외부감사인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안이다. 유한회사에 대한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인데 정무위에서 통과된 안이 법사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정무위에서 삭제했던 '단서 조항'이 법사위에 다시 올라왔다고 한다. 만약 그대로 통과되면 모든 유한회사가 아닌 조건에 맞는 유한회사에만 외부감사 의무화가 도입될 형편이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이견이 있다면 법안심사2소위로 보내서 논의하도록 하겠다"는 법사위원장의 방침 때문이었다. 법안심사2소위에는 김진태 한국당 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소위원회 제도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은 표결로 통과 여부가 정해진다. 법안 표결을 위한 의사정족수는 위원회 위원 과반이 출석하면 된다. 이들의 과반이 찬성하면 법안이 가결되는 구조다.

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미국 하원의 경우 다수제가 전체적인 하원 의회 운영의 기본원칙으로 확립돼 있기 때문에 의결정족수는 엄격하게 준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리즈 끝>

[김효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