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프로그램 '어린이방학주간'(KVW)
2차대전후 폐허된 네덜란드의 '국토 재건' 정신 담겨
네덜란드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어린이방학주간'(KVW)에서 집을 짓는 어린이들© 차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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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아인트호벤=뉴스1) 차현정 통신원 = "뚝딱 뚝딱…, 아니 거기 말고 여기에 벽을 세우면 어떨까?"
"망치 좀 가져 올래? 어떤 못을 박아야 여기를 연결할 수 있지?"
"지붕은 뭘로 할까? 비에 젖지 않으려면 비닐로 덮어 볼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인트호벤은 세계적인 생활가전 회사 필립스의 모태가 된 도시다. 첨단 하이테크 사업과 유명 반도체 회사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유망한 스타트업의 에코 시스템(eco system)을 육성하는 하이테크 캠퍼스가 있는 곳으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그런데 최첨단의 이 도시에 사는 어린이들이 여름에는 목수가 된다. 올해도 옛날 공군 비행장으로 쓰였던 아인트호벤의 넓은 공터에 오두막 집과 텐트 모양의 나무토막이 여기 저기에 세워져 있고,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망치질을 하며 집을 만든다. 저학년들은 인디언 텐트를 꾸미고 고학년들은 제법 집의 모습을 갖춘 오두막을 분주하게 세우고 있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특이한 여름방학 캠프인 '어린이방학주간'(KVW·Kinder Vakantie Week)은 해가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 자원봉사자 30명이 한 해 꼬박 이 3일간의 신나는 캠프를 준비한다. 금방 매진되기 때문에 1월 초부터 시작되는 선착순 마감 온라인 등록을 서둘러야 한다.
3일간 활동비는 25유로(약 3만4000원)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포니(조랑말) 타고 동네 돌기, 요술 풍선 만들기, 솜사탕 먹기, 물놀이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캠프 활동이 많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집짓기'다. 뼈대가 되는 나무 형태만 자원봉사자들이 며칠 전에 세워 놓으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협력해서 집을 만들어 본다.
네덜란드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어린이방학주간'(KVW)에서 집을 짓는 어린이들© 차현정 통신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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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학 캠프는 사실 네덜란드의 '전통' 중 하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어른들은 국가 재건을 위해 모두 쉴틈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이 상황에서는 6주간의 긴 여름방학을 보내고 8월 중순에 새학기를 맞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래서 일에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자신들 역시 학부모인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품앗이 하듯 서로 역할을 나누어 아이들을 먹이고 같이 집 짓는 활동을 하며 신나게 방학을 보냈다.
캠프의 시초가 이런 만큼 어린이의 참여 못지않게 부모의 자원봉사도 필수적이다. 부모가 총 2~3번의 봉사 활동을 반드시 완료하는 것이 아이를 캠프에 보내기 위한 조건이다.
이번 캠프의 자원봉사자들은 약 두 달 전 첫 번째 모임을 갖고 지역내 여러 업체들의 후원 내역을 점검했다. 예를 들어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몇 개가 지원 가능한지, 지역 내 건축사무소에서 공사 후 남았던 못과 망치 몇 개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이 검토됐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쉽게 집을 만들 수 있도록 더운 땡볕 속에서도 나무토막을 미리 잘라놓고 건축자재들을 사용하기 좋게 정리하는 일을 했다.
마지막 의무는 3일간의 캠프 중 하루 동안 직접 캠프에 참여해 6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한 그룹의 안전을 책임지거나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다. 정해진 규칙없이 6명 아이들은 난상 토론을 벌인다. 그 통에 집은 우주선 모양이 되었다가 배 모양이 되기도 한다. 어른은 그저 잘라 달라는 모양의 나무조각을 톱으로 썰어주는 등 보조적인 역할만 한다. 고학년 학생들은 그마저도 스스로 능숙히 해낸다.
3일간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집 짓기에 몰두한다. 오전 9시에 시작한 활동은 오후 3시가 넘어 끝나지만 집에 와서도 내일은 집의 어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끊임없이 종알거리느라 아이들은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네덜란드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인 '어린이방학주간'(KVW)에서 집을 짓는 어린이들© 차현정 통신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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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이 캠프가 즐거움의 '절정'이지만 사실상 방학 내내 아이들은 놀면서 보낸다. 선행 학습이라며 수학 진도를 한참 앞서 배우거나, 학기내 못했던 예체능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아이들은 없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다는게 맞겠다.
6주간 네덜란드의 여름 방학 동안 온전히 교사도 아이들도 쉬고 놀아야 한다면서 어느 학습 센터도 문을 열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저 아이답게 신나게 뛰어 놀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동화 같은 집을 한 채 짓는 뿌듯함을 맛본다.
“엄마 나 이제 망치질 할 줄 알아요. 우리 집에도 뭐 만들어야 할 것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세요! 제가 해볼게요!” 네덜란드의 여름방학은 조금 더 길어진 해 그림자와 함께 이렇게 끝나고 있다.
chahjlisa@news1.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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