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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노조 파괴 ‘배후’ 8년 만에 죗값 치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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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유성기업 노조 파괴 혐의 현대차 임직원 1심 재판 선고

현대차 개입 정황 수두룩… 법원 ‘원청 책임’ 인정할까


한겨레21

2016년 6월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죽음을 추모하는 ‘꽃상여’ 행진을 벌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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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신브레이크, 보쉬전장,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유성기업.

이 회사의 전·현직 대표이사들은 노동조합 설립·운영에 개입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성기업의 유시영 회장은 2017년 12월 1년2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하는데, 유 회장은 부당노동행위로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첫 번째 사용자다. 발레오의 강기봉 대표이사도 지난 7월26일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 확정판결을 받았다.

‘노조 파괴’ 회사들의 공통점



이 회사들의 ‘범행’은 2010~2012년에 집중됐으며, 범행 대상은 자신의 회사에 있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 지회였다. 이 회사들은 금속노조 조합원을 탈퇴시켜 ‘산별노조 지회’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게 하거나, 2011년 7월 이후부터 시행된 복수노조 제도에 맞춰 제2노조를 설립하게 했다. 이후 회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임금 등 노동조건을 차별하거나 부당한 징계를 했다. 해고자도 여럿 나왔다.

이 회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출신인 심종두 노무사가 설립한 창조컨설팅은 이들 회사에서 한 달에 수천만원 자문료를 받으며 회사들의 ‘노조 파괴’ 전략을 자문했다. 창조컨설팅은 이 회사들에 새로 만들 제2노조의 규약도 만들어줬다. 형식상으로는 다른 회사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였지만, 규약의 틀린 글자까지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 심 노무사는 유성기업과 발레오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지난 3월21일)까지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상고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회사들의 마지막 공통점은 모두 현대·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한다는 사실이다. 부품사 생산라인이 멈추면 현대차 생산라인도 멈춘다. 부품사 노사관계가 현대차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이 회사들의 노조 파괴와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자문’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2010년 이후 금속노조를 겨냥한 노조 파괴가 현대차 부품사에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차는 부품사 노조 파괴에 어떤 책임이 있을까. 이에 대한 첫 법적 판단이 사건 발생 8년 만인 8월22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나온다.

8월13일 오후 대전지법 천안지원 앞에선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와 유성기업 범시민대책위원회(유성범대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성기업과 공모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된 현대차 구매본부 최아무개씨 등 임직원 43명에게 법원이 엄벌을 내려달라는 취지다. 앞서 열렸던 마지막 재판에서 최씨 변호인은 판사가 8월29일 선고공판을 열겠다 하자, “그때 해외 출장이 있어 선고를 추석 이후로 미뤄달라”고 했다 한다. 이에 판사는 “일단 22일에 선고하는 것으로 하고 사정이 변경되면 알리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정훈 유성영동지회장은 “유성 노동자들의 9년 투쟁을 마무리 지으려면 예정대로 8월22일에 선고를 해야 한다”며 “기다린 세월이 몇 년인데, 저들 말에 따라 선고를 미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대차 임직원이 유성기업 노조 파괴 혐의로 기소된 경위는 이렇다. 유성기업은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가 2011년 4월 주간 연속2교대제 도입을 요구하며 쟁의행위를 시작하자,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한다. 이 자문 계약의 목표는 “온건·합리적 제2노조 출범”이었다. 그해 7월1일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제2노조를 설립한 뒤 금속노조의 힘을 빼려는 것이다.

유성기업은 2011년 5월18일 노조의 파업에 대응해 직장폐쇄를 한 뒤, 공장 안에 있던 노조 조합원들을 끌어내기 위해 경비 용역을 동원했고 부상자가 여럿 나왔다. 직장폐쇄 장기화에 따라 노조는 회사 쪽에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유지했다. 그사이 제2노조를 만들어 출범하게 했다. 이는 창조컨설팅의 자문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 부품사 노사관계 개입 정황 곳곳에



현대차는 유성기업의 노사관계 관련 보고를 꾸준히 받았다. 현대차 임직원들의 공소장을 보면, 이들은 유성기업 사 쪽이 세운 제2노조의 시기별 조합원 수 목표를 정해주고, 목표대로 조합원이 늘지 않았다고 유성기업을 질책한다. 2011년 9월20일 현대차 구매본부 최씨는 “신규 노조 가입 인원이 최근 일주일간 한 명도 없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목표를 주었는데도 한 명도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부하 직원에게 전자우편을 보냈고, 이는 유성기업 쪽에 전달됐다.

이후 현대차는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 관계자들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으로 수시로 불러 회의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압박은 유성기업에도 부담이 돼, 유성기업 쪽은 그해 11월 창조컨설팅에 전자우편을 보내 “현대차의 무리한 요구로 영업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유성노조(제2노조) 신규 가입자를 70~80%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현대차는 “원활한 부품 납품을 위해 현황을 보고받은 것일 뿐, 노사관계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 유성기업이 제2노조 가입자를 늘려 결품 사태를 막겠다는 대안을 냈기 때문에 현황을 확인하려 한 것일 뿐, 먼저 지시한 바가 없다”는 뜻으로 항변해왔다.

그러나 현대차가 부품사 노사관계에 개입하려 한 정황은 여러 방법으로 확인된다. 2011년 12월 현대차는 부품사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연다. 이때 현대차 관계자가 읽을 목적으로 작성된 대회사(부제: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 현황과 전망)는 창조컨설팅 소속 노무사와 유성기업 직원을 거쳐 현대차로 전달됐다. 현대차의 대회사를 창조컨설팅이 대신 써준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사에서 현대차는 “금년에 우리 현대·기아가 세계 5위의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무엇보다 협력사와 완성차사의 안정적인 노사관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치하했다. 이어 “그러나 내년에는 강경파의 지부장·지회장 당선, 총선과 대선 노동정책 변화 등 영향으로 노사관계가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돼 대책을 수립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힌다.

대회사는 이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은 발레오와 상신브레이크 사례를 언급하며 “노사관계 안정화가 협력사 전체의 노사관계 안정화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 한편, “만도기계·보쉬전장 노조에 강경파 집행부가 들어섰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두 회사는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았고, 그 결과 이곳에서도 금속노조 세력이 약해졌다. 현대차가 부품사 노사관계 안정화를 요구하고, 부품사의 부당노동행위로 이어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한겨레21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기소된 현대차 임직원들에 대한 대전지법 천안지원의 선고 공판을 앞두고 지난 8월1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법원 앞에서 오체투지 투쟁을 하고 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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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나오는 법원 판단



이런 정황은 2010년 노조 파괴가 일어난 발레오의 사연을 다룬 <조선일보>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2010년 4월2일 <조선일보>에 실린 ‘경주 발레오 공장 강기봉 사장 이야기’라는 김영수 당시 <조선일보> 산업부장의 칼럼은 금속노조가 쟁의행위에 들어가자 직장폐쇄를 단행한 발레오를 ‘응원’하며 “강 사장의 외로운 투쟁에 좋은 결과가 나오길 희망한다. 그래야 한국 제조업에도 희망이 있다”고 적는다.

칼럼에는 “현대차는 발레오 노조의 파업이 계속될 경우 납품업체를 변경하고 신제품 입찰에도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는 대목도 있다. 사실이라면 원청이 하청사의 노조 파업을 문제 삼아 거래 관계를 끊겠다고 윽박지른 셈이 다. 이 칼럼이 실리기 보름 전, 발레오는 창조컨설팅과 월 5천만원(향후 2500만원으로 변경)짜리 컨설팅 계약을 맺고, 창조컨설팅 자문에 따라 조합원들을 포섭해 금속노조 지회였던 노조를 기업별 노조로 조직 형태를 바꿨다.

이 때문에 8월22일 현대차 임직원에게 내려질 선고는 비록 1심이긴 하지만, 2010년 이후 현대차 부품사 소속 금속노조 지회에 대한 현대차의 노조 파괴 책임을 따지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전망이다. 당시 노조 파괴 광풍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청 사용자도 하청노동자 부당노동행위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판결이기도 하다.

이번 선고는 사건 발생 8년 만에 내려지는 것이다. 사건 발생 6년 뒤에야 현대차 임직원이 기소됐고, 기소 2년이 지나 선고에 이르렀다. 검찰은 2012년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 혐의 수사 과정에서 공소사실의 핵심 증거인 전자우편을 발견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다가 해당 전자우편을 노조가 발견해 고소한 뒤 공소시효 만료 며칠을 앞두고서야 기소했다. 재판 이후에도 현대차가 ‘임직원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법인까지 처벌하게 한 노조법의 양벌 규정은 위헌’이라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내 사건이 헌재로 가면서(헌재는 양벌 규정이 위헌이라고 봐, 함께 기소된 현대차 법인은 공소 취소됐다) 재판이 1년 이상 미뤄졌다.

유성기업 지회의 기자회견이 열린 8월13일 천안지원 앞 기온은 36℃였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살인적인’ 날씨에 기자회견을 마친 조합원 20여 명은 소복을 차려입었다. 그리고 햇볕으로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온몸을 던져 절하고 일어나 걷기를 반복했다. 소복은 얼마 되지 않아 땀에 흥건히 젖었고 이내 새까매졌다. 염천의 오체투지는 이들이 겪었던 일들에 견줘 ‘큰일’은 아니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지난 8년 동안 해고를 비롯한 부당 징계와 차별, 그로 인한 정신 질환, 동료의 죽음(한광호 조합원이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을 겪었고, 사 쪽 관계자들과 빚어진 충돌로 ‘폭력행위’ 등의 혐의로 여러 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고공농성과 천막농성도 숱했다.

“노조 파괴에 법정 최고형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사건의 공범인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과 창조컨설팅 심종두 노무사가 이미 실형 선고를 받은 점을 들어, 현대차 임직원들에게도 법정 최고형 선고를 주장한다. 6837명의 탄원서도 법원에 제출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2011년 노조 파괴로 인해 9년 동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유성기업 노조 파괴를 지시한 현대차가 건재한다면 현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노조 파괴를 중단하기 위해 현대차 임직원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할 것을 촉구합니다.” 검찰의 구형은 최 실장에게 징역 1년, 나머지 직원에겐 징역 8개월 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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