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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폭우 속 비폭력 행진… 홍콩시민들 "우린 멈추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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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째 주말 시위

18일 오후 2시(현지 시각) 홍콩섬 동쪽 빅토리아 공원에는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원은 집회 시작 30여 분 만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최 측인 홍콩민간인권전선은 2시 15분부터 시위자들을 도로 행진으로 유도하는 '유수식 집회(流水式集會)'로 이끌었다. 행진을 금지한 경찰에 맞서 물이 넘쳐 흐르는 것처럼 참가자들을 자연스럽게 행진으로 유도한 것이다. 참가자가 계속 밀려들면서 이후 4시간여 동안 공원의 인파는 줄지 않았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홍콩 정부 청사를 잇는 각 도로는 거대한 우산의 물결로 뒤덮였다.

조선일보

중국은 또 진압 훈련 -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무장경찰이 18일 홍콩과 가까운 중국 광둥성 선전에 있는 한 스타디움에서 진압봉과 방탄복, 방패 등으로 무장한 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날 훈련장에는 장갑차와 군용 트럭도 배치돼 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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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대열의 시민들은 "경찰의 폭력에 대해 항의한다"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때릴 테면 때려라.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작은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유독 많았다. 참가자들은 오후 9시 15분 집회 공식 종료가 선언될 때까지 주최 측이 내세운 '화이비(和理非·평화롭고 이성적이고 비폭력적인 집회)'의 정신을 충실히 따랐다.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이날 집회를 앞두고 중국은 선전에서 또다시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 환구시보는 "17일 중국 무장경찰과 공안(일반경찰)이 선전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했다"며 훈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1분짜리 동영상에서는 수천명 무장경찰과 공안들이 수백 대 장갑차를 배경으로 사열을 받은 뒤 실전 같은 진압 훈련에 돌입했다. 진압 상황에 돌입하기 전 한 지휘관이 광둥어로 "시위대는 폭력을 멈추고 뉘우쳐야 한다"고 외쳤다. 헬멧과 방탄복, 방패로 무장한 무장경찰은 시위대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고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한 뒤 시위 대열을 정면 돌파했다. 경찰견이 달려들어 시위자를 물어뜯는 장면도 나왔다. 진압의 타깃이 된 가상 시위대는 홍콩 시위대와 같은 검은 옷과 노란 헬멧 차림에, 쇠파이프를 든 모습이었다. 중국이 홍콩 시위를 겨냥한 대규모 훈련을 공개한 것은 지난 6, 10일에 이어 2주 만에 이번이 세 번째다. 현재 선전에는 선전만(灣) 홍콩 출입경 검문소에서 불과 2㎞ 거리의 축구 경기장에 9000명의 경찰력, 500대 이상의 군용 트럭들이 집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의 경고도 계속됐다. 인민일보는 17일 "폭동을 종식해야만 홍콩에 미래가 있다. 폭력을 엄벌하고 분쟁을 멈추며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곳도 반복적인 소요와 동요를 이겨 내지 못한다"며 중국 정부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시사했다. 홍콩 기본법(헌법에 해당) 해석권을 가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미국을 향해 강력한 경고를 내놨다. 전인대 외사위원회 대변인은 17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이 홍콩 시위대를 두둔한 것을 비판하면서 "홍콩에서 발생한 극단적인 폭력 행위는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 위반"이라며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마지노선에 도전하고 홍콩의 법치와 질서를 짓밟고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해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인사들을 겨냥해 "홍콩의 번영과 안정은 홍콩 시민을 포함한 전체 중국 인민의 의지로, 어떠한 외부 세력의 간섭으로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는 18일 "법을 안중에 두지 않는 폭력 시위자들을 법에 따라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무력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위대에 밀렸다가는 중국의 힘을 빌려야 하는 단계로 갈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차원이었다.

관건은 이번의 평화로운 시위가 지속될 수 있느냐 여부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선전에 중국군이 집결해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홍콩 정부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접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중국의 무력 개입 압력에도 자신들의 요구를 접을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주력 시위층인 대학생들도 매주 월요일 동맹 휴업을 선언했다. 매 주말 심야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시위 사태 장기화를 예고한 것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홍콩 사태를 길게 끌고 갈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홍콩 사태를 정권 전복 차원의 색깔혁명, 테러로 규정한 이상 중국이 개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홍콩 시위 사태 초기 침묵으로 일관하던 관영 매체들이 홍콩 사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강경 대응 명분을 쌓아올린 상황에서, 단호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산당 스스로 권위를 갉아먹고 반중 여론을 내륙으로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자초하는 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홍콩 시위대 일각에선 중국 무장경찰이 이미 홍콩 폭동 진압 경찰에 투입됐다는 미확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시위 진압 경찰 중 일부가 광둥어가 아닌 중국어를 쓰고 홍콩에선 쓰지 않는 '동지들'이라는 표현 등을 썼다는 것이다.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번호판을 단 차량이 시위 현장에서 목격됐다는 말도 돌았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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