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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방학이 싫었던 사서 교사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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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와~ 방학이다!” 방학식에서 학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교장 선생님의 여름방학 안전교육이 한 시간여 가까워지는 상황에도 평소보다 덜 지친 표정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는 방학이 싫었습니다. 매일 집에만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의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지난 나이지만, 교사라는 자리에서 방학을 맞이합니다. 설레기도 아쉽기도 합니다.

저는 1학기에 1학년, 2학기에 2학년 독서·진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과 진로 시간에 책 읽기를 재료로 수업합니다. 진로라고 해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조정래 작가의 <천 년의 질문>에서 나온 시골 할머니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수업은 진로를 위해 어떤 점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라고 알려주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는 일에 관해 토론하고 탐구합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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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이야깃거리 재료에 우리의 생각이 버무려지는 시간입니다. 저도 아직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사람이라, 학생들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 1학년 학생 140명에게 한 학기 수업 기록을 간단하게 받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수업 장면, 수업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점, 특별히 좋았던 점을 기록하여 제출하도록 했지요. 학생들에게 수업 기록을 부탁하면서도 긴장합니다.

‘어떻게 하면 전체가 몰입해서 책을 읽을까? 읽은 내용을 확장해서 이야기 나누고 글로 표현하는 일을 잘 알려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며 진행한 수업이지만, 학생들의 진심이 담긴 평가를 받기 전에는 항상 설레면서 떨립니다. 수업 기록은 2학기 수업을 준비하기 위한 기초 자료라고 생각하며 받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나 봅니다.

다행히 이번 수업 기록은 긍정적으로 쓰였더군요. 교과서도 없는 수업에서 세상에 나온 단행본 중 몇 권을 골라 수업한다는 일이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업 한 시간을 위해 단행본 한 권을 읽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부분을 발췌하기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고민하기도 하지요. 한 권의 책으로 수업을 준비하면 보통 에이포(A4) 10장 분량의 원고가 나옵니다. 이번 방학에는 8권의 책을 준비했습니다. 청소년 소설, 자연과학, 에세이 등 삶의 자세와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방학이 되면 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학기 중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던, 제가 출장 중에 학교로 찾아와서 만나지 못했던 제자들을 만납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가정 등을 이유로 여유 있게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방학 중에 만납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제자들인데 짧게 한두 시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아쉽더군요. 그래서 방학 중에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과거를 추억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지요. 연락되는 제자는 많지 않지만 2~3일 정도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받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그렇겠지요?

방학 중에 연수를 듣기도 합니다. 이번 방학에는 연수를 듣는 입장이 아닌 제 경험을 전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말로 정리해서 전달하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제 부족한 부분을 느껴봅니다.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과 대화를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했던 수업 방식, 프로그램 진행 등이 학생들에게 어떤 부분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뚜렷하게 그려지는 시간이더군요. 자연스럽게 2학기 방향이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틈틈이 방학 중에도 교육청이나 교육 기관에서 오는 공문을 처리합니다. 벌써 2019학년도 여름방학이 끝났습니다. 1학기를 회상하고 방학을 정리하며, 2학기에 할 일을 수첩에 정리해봅니다.

글·사진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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