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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10년 만에 정상에 오른 요트팀, 명맥 끊기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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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균 서신중 요트팀 감독

학생 수 감소 여파 요트팀에 미쳐

학교 지원 충분한데 팀 소멸 위기

도시보다 시골 학교에 큰 영향

요트협회 등록 선수 하락세 뚜렷

전국 감독·코치들 똑같은 고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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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균(62) 경기 화성시 서신중학교 요트팀 감독은 지난 6월 선수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는 태화를 설득하려 쫓아다니다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덩치가 커서 2인승 요트 훈련을 시작했는데 중도에 그만두겠다니 안타까워서 매달린 터였다. 태화는 요트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남은 3학년 2학기 공부를 해서 특성화고를 진학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2~3주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요지부동이었다. 진학 지도 선생님과도 여러 차례 상담을 해서 진로를 굳힌 뒤였다. 그의 어머니와도 접촉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 학생도 줄고 선수도 줄고

김 감독 곁에는 이제 ‘레이저4.7’ 종목의 3학년 창민이와 ‘옵티미스트’ 종목을 하는 2학년 범신이 등 두 선수밖에 남지 않았다. 보통 세 명에서 많을 땐 다섯도 됐던 팀이다. 선수단이나 팀이라고 하기 쑥스러울 정도다. 걱정은 이제부터다. 창민이가 내년에 졸업을 하게 되면 선수는 범신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범신이도 고등학교에서 요트를 계속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며 변심 가능성을 내비쳤다. 요트가 좋아서 취미생활로 하지만 전문적인 선수로 남을지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충원을 못 하게 되면 2년 후에는 팀이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지훈련을 하거나 시합에 나간다고 하면 토 하나 달지 않고 경비를 내준다.

서신중은 서신면 소재지의 사립학교라 학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가 도시 학교보다 급하다. 그동안 한 학년당 두 학급이었으나 올해는 신입생이 줄어 1학년은 한 학급으로 줄었다. 주로 서신중으로 진학하는 서신초등학교는 1, 2학년 학생 수가 고작 15, 16명이다. 인근 제부도에서도 초등학생 몇명이 서신중으로 진학을 해왔는데, 한 명 남은 학생이 전학을 간 뒤 작년과 올해 입학생이 한 명도 없어 결국 폐교가 되고 말았다. 김 감독은 긴급 대책을 마련한다고 2학기 개학을 하면 김포 아라마리나에서 요트 체험학습을 하기로 했는데, 요트 선수를 하겠다는 학생을 한 명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다.

요트는 초등학교 때 시작해 재미를 붙이도록 만드는 게 이상적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도 사귀고 피시방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말에도 훈련을 해야 하는 요트 선수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서신중에서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중학교에서 뽑은 아이는 범신이 말고는 성공 사례가 없다. 한번은 선수들 기량을 키우려고 매 주말 한 번 하던 훈련을 두 번으로 늘렸더니 아이들이 요트를 포기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훈련을 줄이면 실력이 안 따라오고, 훈련을 늘리면 아이들이 안 따라온다. 이런 현상을 반영해 포항과 부산 등에서는 클럽 형태로 선수를 기르고 있다.

■ 감독·코치들도 장래 불안감

학생 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요트 선수도 줄어드는 건 전국적인 추세다. 대한요트협회에 따르면, 3년 전인 2016년 초·중 선수는 124명이었는데, 2018년에는 100명으로 줄었다. 이나마도 대회에 나오는 선수는 더 적다. 올해 열린 포항, 진해, 부안의 대회를 보면 초·중 선수는 50명 전후다. 선수로는 등록을 했지만 대회에는 나오지 않는 허수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선수가 감소 추세에 들어선 것은 출산율 저하의 여파다. 감독이나 코치, 경기 운영진도 대회장에서 만나면 팀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는다. 학생 수가 줄고 선수가 줄어듦에 따라 감독·코치 자리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이 요트를 만난 건 1975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다. 요트를 가진 졸업한 대학 선배 몇몇이 명맥을 이으려 자신들의 보트를 무상으로 빌려준 것이 계기가 됐다. 주말이면 서울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고 양수리까지 가서 1박2일로 스나이프라는 요트로 연습을 하고 시합을 하는 등 젊음을 불태웠다. 요트가 생소한 스포츠라 기술은 부족했지만 열정만은 높았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요트 국가대표팀이 꾸려지는 등 요트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요트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유람선 같은 커다랗고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호화 요트를 생각한다. 대한요트협회가 하는 요트 시합은 대개 한 명이나 두 명이 타는 작은 배로 하는 시합이다. 영어로는 딩기 또는 세일링 보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특이하게 호화스러운 요트로 둔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런 딩기를 탔는데 호화 요트를 탔다는 신문 기사가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김 감독은 대학 졸업하고 몇년 뒤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 제안을 받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엔 1년에 한 달 정도 훈련을 시키는 정도였다. 그러다 1987년 국가대표 상비군 전임코치에 올랐다. 이후 상비군 감독을 맡는 등 20여년간 국가대표 양성을 했다. 2009년 감독에서 물러난 뒤 서신초등학교 요트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는 전곡에 마리나가 건설되면서 경기도와 화성시가 요트팀 창단과 훈련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었다. 김 감독은 흔쾌히 수락했고 서울 사람에서 화성 사람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 정상에 오르자 내리막길 아쉬워

서신초등학교에서 선수를 키워 인근 서신중학교에 보냈다. 중학교 선수들이 지도자가 없어서 그곳 코치까지 자연스럽게 겸임을 하게 됐다. 6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던 것이 공립학교인 서신초등 교장이 바뀌며 방과 후 활동으로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서 팀도 해산됐다. 다행히 서신중에서 감독을 계속하면서 팀을 이끌어왔지만 초등 선수의 수급이 끊기면서 중학교도 원활한 팀 운영이 제약을 받게 됐다. 소년체전을 제외한 전국대회에서는 금메달이 있었지만 가장 비중이 큰 소년체전에서는 수년 동안 아쉽게도 은·동메달에 그쳤었다. 작년에 창민이가 소년체전 남자중등부 옵티미스트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 김 감독을 기쁘게 했다. 창민이는 올해 소년체전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했다. 그는 이번 해양스포츠제전에서는 한 등급 올려 중등부 레이저4.7에서 1위를 하는 등 2년간 전국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따냈다. 이번 제전에서는 범신이도 중등부 옵티미스트에서 첫 금메달을 땄다. 김 감독한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눈가엔 아쉬움이 스쳤다.

“은퇴할 날이 머지않았다. 서신중 출신 선배들이 돌아와서 감독을 하는 날을 보고 싶었는데….”

글·사진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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