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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라이프 트렌드] "팀장님, 떠납니다 마음대로 즐기다 다음달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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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시대 직장 풍속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2030세대가 탐독해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책들이다. 책 제목처럼 이들은 어렵게 취업에 성공해도 연봉·복리후생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는 데 미련이 없다.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일까 요즘 정부나 기업이 근로 환경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중 한 달 휴가, 즉 안식월을 도입하는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담당자가 한 달씩 자리를 비워도 업무엔 지장이 없을까. 직원들은 이 복지제도를 어떻게 만끽하고 있을까. 안식월을 다녀온 직장인 세 명의 소감을 통해 안식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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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터에선 세대 간 갈등으로 시끌시끌하다. 젊은 세대는 상사를 ‘꼰대’로 표현하며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에티켓·희생정신이 부족한 ‘요물’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에 대한 개념부터가 서로 극명하게 갈린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입사한 마음은 같지만, 기성세대는 의리를 지켜야 하는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회사의 발전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개인의 능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우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이 자신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차별화된 ‘복지제도’다. 직원의 휴식·퇴근을 보장하기 위해 점심·퇴근 시간에 저절로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PC오프제를 비롯해 근무시간대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남성 육아휴직 확대, 주4일근무제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눈에 띄는 제도는 방학처럼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지는 안식월이다. 물론 100% 유급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안식월을 운영하는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젠 스타트업·중소기업·대기업까지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젊은 직장인도 이 제도를 누릴 수 있도록 조건도 완화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간부로 승진할 때 1개월간 안식월 휴가를 떠날 수 있고, 한화그룹은 과장부터 상무보까지 상위 직급에 승진할 때마다 1개월 휴가를 받는다. 지난 3월 기준 안식월 사용률은 81.3%에 달했다. 2005년 일찌감치 5년 근속을 조건으로 안식월 제도를 도입한 이베이코리아는 1년에 약 150명이 휴가를 사용한다. 이 밖에도 PR회사 피알원과 엔자임헬스는 3년마다 안식월이 주어진다.

직원들의 빈자리를 효율적으로 메꾸기 위해 기업들은 저마다의 노하우를 마련하고 있다. 가령 매년 초 대상자 명단을 발표해 팀에서 연간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고 대체인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또한 안식월을 다녀온 직원에겐 1년 정도의 의무 근무기간을 제시해 인력 이탈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페루·알래스카 자연 탐험



이후정 이베이코리아, 11년차

중앙일보

“총 5주를 페루에서 반, 알래스카에서 반 보냈다. 평소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그램을 보며 조금씩 키웠던 대자연 체험의 로망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페루에서는 ‘Salkantay Trail’이라는 트레일을 따라 트래킹과 캠핑을 했다. 난도가 높고 고산병 등으로 고생했지만 그만큼 멋진 대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알래스카에서는 2주간 캠핑을 했다. 매일 불편한 잠자리와 추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와 싸우고 밥도 직접 지어야 하는 고생을 했지만 다양한 국가의 친구도 만들고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체험할 수 있어 행복했다.

중앙일보



눈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휴대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는 곳에서 자연인처럼 지내며 평소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던 것들을 말끔히 비워낼 수 있었다. 많은 걸 떨쳐 내서일까. 혹은 회사 생활을 너무 오래해서일까. 복귀 후 적응도 빨랐다. 아쉬울 때마다, 업무가 힘들 때마다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 안식월에도 알래스카와 페루로 떠날 계획이다. 이번엔 더 깊숙한 곳에서 자연과 하나 될 생각이다.”



미국 문화체험·영어공부



조인정 피알원, 8년차

중앙일보

“쉬는 날이면 운동을 하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 등 직장 밖에서 행복거리를 찾아다니는 게 취미다. 사실 입사할 때만 해도 안식월 제도가 진짜 실행되는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더라. 물론 안식월 대상자 전원이 휴가를 썼고, 업무도 대체인력이 배치되기 때문에 부담이나 눈치 없이 떠났다. 나도 3년 근속해 안식월을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신나게 일했다.

막상 안식월이 다가오니 거창한 목표보다는 미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서 소소한 추억을 쌓고 싶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한 달을 살며 어학 공부를 하고 틈틈이 미술관, 하이킹, 도자기 수업 등도 즐겼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기존과는 다른 분위기에 새로운 활력이 솟아났다.

꿈같은 한 달이 지나고 초반 일주일 정도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 템포 쉰 덕분일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집중력도 높아졌다. 또 당장 앞의 일보다는 나중을 생각하는, 숲을 보는 시각이 생겼다고 느낀다. 이제 또 5년 후를 계획 중이다. 이번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하이킹 투어를 할 계획이다.”



멋진 몸매 만들어 촬영



김민지 엔자임헬스, 4년차

중앙일보

“30세에 맞이한 첫 안식월.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보디 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정했다.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선 당연히 멋진 몸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식월 내내 식단 조절과 운동에 집중했다. 물론 한 달 안에 프로필용 몸을 만들긴 쉽지 않다. 안식월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해 5개월 후 촬영을 진행했다. 가히 인생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한 건 운동 하나였지만 한 달 동안 체력을 기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회사에 복귀해서도 에너지가 넘쳤다. 업무에 복귀하기 전엔 앞으로의 3년을 어떻게 지낼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역량 강화를 위해 단기 영상 편집 수업을 수강했다. 안식월 당시엔 잘 몰랐는데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평소였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애사심이 솟구쳤다. 회사에서 의무처럼 다녀오는 휴가지만 나의 빈자리를 위해 여러 직원이 힘썼을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촬영 당시 몸매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 다음 안식월을 위해 그때까지 파이팅.”

글=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사진=각 사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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