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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일사일언] 끝내주는 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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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주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자


청소년기에 즐겨 듣던 음악이 평생의 취향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최신 가요엔 시큰둥하다가도 젝키의 노래만 흐르면 피가 펄펄 끓는 걸 보니 그 말은 참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 내가 친구를 따라 록 페스티벌에 갔다. 초면의 외국인들이 혀 꼬부라진 외국말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영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위저 공연은 볼만할 거야." 친구가 말했다. "그게 누군데?" 묻는 나에게 친구는 무언가를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들어 보면 알아."

잠시 후 웬 미국 아저씨들이 무대에 올랐다. 친구의 말대로 들어 보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유명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저 아저씨들 노래구나, 고개를 끄덕이는데 보컬이 외쳤다. "대박!" 뭐야, 한국말인가? 귀를 의심하는 순간 그가 또 외쳤다. "끝내줍니다!" "소리 질러!" "죽을 때까지 놀자!" 심지어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도 불렀다. 나는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한 그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끝내주게 소리를 지르며 죽을 때까지 놀았다.

어느덧 무대의 마지막.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위저! 위저!" 부르짖는 청중을 향해 그가 외쳤다. "또 불러 주세요. 언제든 달려올게요!" 물론 한국말이다. 음악으로 온 세계를 들썩이게 한 사람이 무대를 얻기 위해 저토록 겸허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동시에 나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봤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나, 잘난 구석 하나 없으면서 어떻게든 있어 보이려 허세만 부리지는 않았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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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 일색이던 나의 음악 목록에 위저의 노래가 추가됐다. 아쉽게도 젝키의 노래를 들을 때만큼 몸이 뜨거워지지는 않지만, 언제든 달려올 거라고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서인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위저는 우리나라에 언제 또 오려나. 내년 록 페스티벌은 너무 멀었으니 다가오는 추석 명절 외국인 장기자랑에라도 섭외하면 안 될까? 인기상은 떼 놓은 당상일 텐데.

[이주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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