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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혁신학교여서 성취감·자부심 컸는데… 이런 모교를 폐교한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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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중 졸업생들이 말하는 ‘혁신학교’】

아이디어 내고 실행하는 경험

주입식 교육보다 큰 자산으로

공부 안 할 거라는 건 고정관념

자율활동 많아 수시 학종에 유리

직접 다녀 본 우리 얘기 들어주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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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신설 조건에 묶여 폐교 위기에 몰린 서울 강서구 송정중은 9년차 혁신학교다. 폐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혁신학교로서 쌓아온 성과를 잃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일각에선 “새로 짓는 학교는 절대로 송정중 같은 혁신학교가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교육당국이 사전에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가 가장 크지만, 혁신학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들도 송정중 폐교 문제의 중요한 배경이다. 혁신학교로서 송정중은 실제로 어땠는지, <한겨레>는 졸업생 5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참석자

곽연건(남, 2016년 졸업, 대학생)

김동혁(남, 2016년 졸업, 대학생)

염주현(여, 2017년 졸업, 고등학생)

이아린(여, 2017년 졸업, 고등학생)

장주영(여, 2017년 졸업, 고등학생)

사회 먼저 각자 혁신학교인 송정중을 다녔던 경험이 어땠는지 말해달라.

곽연건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은 수업을 듣고 시험에 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업 방식이다. 그러나 송정중에서는 ㄷ자로 자리 배치를 하고, 발표 수업, 조별 수업 등을 통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이끈다. ‘자기주도학습’에 익숙해진 덕분에 고등학교 진학해서도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염주현 수업 말고도 학생들의 자치 활동이 많다. 원래 표현을 잘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중학교 때 수업이건 활동이건 스스로 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리더’ 구실을 하는 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장주영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덕분에 다른 학교에 견줘 학교폭력 같은 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은 무얼 배울까 어떤 활동을 할까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이아린 송정중에선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경우 ‘제주4·3’을 공부하고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배지를 만들어 파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수익금은 ‘제주4·3’ 관련 단체에 기부했다. 일찍부터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목표로 삼았는데, 언어 폭력과 관련된 문제를 토론하는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김동혁 일반적인 중학교를 나왔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기회만 있다. 그러나 송정중에서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기회도 있고, 스스로 말을 할 기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지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 내 경우엔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을 많이 보면서 방송작가라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 지 정하지 못해 힘들어하는데, 나는 방송작가라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차곡차곡 필요한 공부를 쌓아가고 있다. 경험한 것이 많으니 자기소개서 쓰는 데에도 적어낼 내용이 그만큼 많다.

송정중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목동의 다른 중학교와 연합하여 말레이시아에 갔던 활동이 기억난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등 교류 활동을 했다. 지금도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중학생으로서는 경험해보기 어려운 일인데,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동생도 송정중에 다녔는데, 인도네시아에 다녀오는 등 그런 활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학생회 임원이 되어 학교 축제 전체를 기획했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송정중에서는 선생님들이 정말로 ‘조언’만 해주실 뿐 모든 것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한다. 행사를 마쳤을 때 느꼈던 당시의 성취감은 지금도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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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과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가 있다.

교과과정을 배우고 시험도 본다. 오히려 교과과정보다 더 많이 배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보니, 일방적인 강의를 들을 때완 다르게 몰랐던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된다. 고등학교에 와서, 다른 친구들은 잘 모르는 문학작품인데 나는 중학교 때 이미 배워서 알고 있던 경험이 많았다.

예컨대 수학 과목의 경우, 송정중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풀이법 하나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어떤 풀이법을 적용하면 좋을지 의논을 한다. 가르치는 것만 배우면 1만 배우게 된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대학에 들어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학문 연구나 소통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직접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배움의 토양이 됐다.

고등학교에서도 기존의 강의식 수업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서술형 시험도 많아졌다. 지난해에는 학생이 일일 교사가 되어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일반적인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은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대체로 어려움을 겪더라. 내가 송정중에서 이런 걸 해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 조는 쉽게 끝냈다.

송정중 재학 시절 처음으로 몇 개 과목이 100% 서술형으로 출제됐다. 오롯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답을 작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됐다. 고등학교 와서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사회 그런데도 혁신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늘고 있다. 그런 인식은 어디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는지? 자치 활동이 많다는 것 때문에 공부를 성실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배우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오히려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보통 학부모님들이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계시는데, 우리처럼 경험해본 사람의 이야기에 먼저 귀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이 나라의 미래가 청소년이라면, 청소년들은 그들이 자라는 환경인 학교에서부터 스스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주입식 교육 때문에 사회에 나간 뒤 정작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혁신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성’을 길러주는 학교다.

‘대학 입시에 불리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심지어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 차례 지필고사로 등수를 매기는 정시는 그렇다 쳐도, 수시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성적’뿐 아니라 비교과도 필요한데, 비교과는 학생들이 얼마나 자율적인 활동을 해봤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정보를 접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가 비교과 능력이 된다.

내가 바로 비교과의 득을 본 사람이다. ‘성적’만으로는 현재 지망하는 대학들에 원서를 내밀기 어렵지만, 이른바 ‘상위권’ 학생들보다 생활기록부가 워낙 충실하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응원을 해주신다.

한 차례 시험을 보는 것(정시)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보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갈린다고 본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다른 학교에 견줘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그를 바탕으로 삼은 ‘사회성’을 길러주고, 이는 다양한 방식의 평가(수시)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입시에 있어서도 혁신학교가 오히려 더 유리한 것 아닌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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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송정중 폐교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입시라는 문제 앞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의미는 현실적으로 같지 않다고 본다. 내 경우엔, 혁신학교인 중학교를 다녔다는 것이 입시에서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송정중에서 배웠던 토론, 사회 생활의 기초 등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도 자양분이 되어 꾸준히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입시에 도움이 되고 안되고를 따지기 이전에, 무엇보다 우리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준 학교를 잃고 싶지 않다.

졸업생이라고 해서 꼭 모교의 운명에 의무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송정중 폐교에 반대하는 이유는, 이 학교가 그만한 가치를 지닌 학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중학교 때 미숙하지만 일을 분담하고 스스로 할 일을 찾는 경험을 해본 것이, 고등학교, 대학교, 그 뒤로도 피와 살이 되는 자양분이 된다.

아이들에게는 여러가지 경험을 많이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부모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바깥에서 그런 걸 제공해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것은 학교가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송정중이 그렇게 해왔다.

‘계속 시키는 공부만 하라고 해놓고, 막상 사회에 나가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송정중 같은 혁신학교를 없애는 것 역시 이런 모순에 해당한다 생각한다. 송정중이 거둔 성과를 이대로 묻어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송정중 폐교 조건으로 세워지는 마곡2중, 혁신학교 될 수 있을까?



송정중 폐교가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지게 된 데에는 혁신학교를 둘러싼 갈등과 이에 따른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까지 혁신학교를 지정할 때 공모뿐 아니라 ‘임의 지정’ 방식도 함께 운영해왔다. 학교를 신설하는 경우 등에 교육감이 혁신학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임의 지정’ 방침이 유지됐다면, 송정중 폐교를 조건으로 삼아 내년 3월 개교하는 마곡2중(가칭)은 혁신학교로 지정될 수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사실상 혁신학교인 송정중이 대체 이전하는 개념이라는 식으로 설명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택지개발지구인 헬리오시티 내 신설되는 가락초등학교와 해누리이음(초·중)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뒤 서울시교육청은 ‘2019 서울형혁신학교 운영 기본계획’에서 기존 ‘임의 지정’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개교 학교 및 재개교 학교는 ‘예비혁신학교’로 1년 동안 운영 지원한다”는 방침을 새로 만들었다. 선택권을 학교 구성원들에게 준 것이다. 가락초, 해누리이음학교 이후 이 ‘예비혁신학교’ 규정이 처음 적용되는 학교가 마곡2중이다.

이로써 애초 알려진 바와 달리 마곡2중이 송정중의 뒤를 잇는 혁신학교가 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송정중 내 마곡단지에 사는 학생들의 비율이 60% 가량 되는데, 마곡단지 학부모들은 ‘예비혁신학교’ 지정까지 반대할 정도로 혁신학교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한 마곡단지 학부모는 “혁신학교였던 송정중 교사들이 마곡2중에 오는 것조차 절대 안된다는 여론”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미 학교 통폐합 과정에 잘못된 점이 드러난데다, 혁신학교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왔고 앞으로도 혁신학교의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학생·학부모 역시 40% 가량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 단체들은 “‘작은 학교 살리기’ 차원에서 송정중을 유지시켜 혁신교육의 맥을 계속 이어가게 하라”고 주장한다. 일단 송정중을 1~2년 정도 유지하면서 재검토를 해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이 애초 예정대로 송정중 폐교 관련 행정예고를 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송정중 폐교를 반대하는 쪽은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 소송 등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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