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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부당한 대우에도 내색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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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고 자란 곳은 치앙마이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고생시키는 사람으로서 입을 꾹 다물고 있기가 민망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태국에 열두 살짜리 아들과 두 살 된 딸이 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스스럼없이 휴대폰에 담긴 아이들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의젓한 아들과 어린 딸의 환한 웃음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타향살이도 서러울 텐데, 강아지한테 물리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나는 또다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경향신문

그 사고의 책임은 모두 나한테 있었다. 사고의 배경에는 지은 지 2년도 채 안 된 아파트 천장에 물이 새서 에어컨 배관 공사를 다시 하게끔 한 건설사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아지를 들여놓은 방문을 연 어린 조카 탓도, 방문이 열리자마자 낯선 방문자한테 부지불식간에 달려들어 손을 덥석 물어버린 강아지 탓도 할 수 없다.

강아지가 노령이라 이빨이 성치 않은 줄 알았는데, 웬걸 물린 이의 손에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피는 나지 않았어도 금방 시퍼렇게 멍이 올라왔다. 사과하고 치료비를 주며 함께 온 사장한테 병원 진료를 받으면 청구하라고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말고 병원 가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부랴부랴 다친 이를 데리고 직접 병원에 갔다.

그의 이름은 소라야였다. 진료를 받은 뒤 우리는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그는 식당 일을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에어컨 수리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나섰다고 했다. 소라야는 나와 헤어질 때까지 원망은커녕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을 다치게 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그는 말없이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언짢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못하던 태국인 부부의 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올여름에도 불볕 아래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또한 부당해도, 원하는 게 있어도 내색조차 못한 것은 아닐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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