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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수첩] 자충수 걱정 키우는 민간 상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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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발표하고 나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라디오방송에 나와 한 얘기를 듣자마자 문재인 정부가 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실책을 범하는지 알게 됐다. 김 장관은 지난 14일 "강남에서 3.3㎡당 시세가 1억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데 개입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는 걸 막겠다고 한 셈이다.

강남을 규제 타깃으로 설정해 가격이 오를 낌새가 보이면 억지로 눌러야 한다는 정부의 생각은 약 15년 전 노무현 정부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강남 집값이 오르는 건 ‘죄악’이고 ‘주택 정책 실패’라는 관념이 정부 관료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판박이 정책으로 강남을 옥죄었지만 ‘강남의 가치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란 메시지로 해석한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강남 집값은 오히려 더 올랐다. 과거에 이미 비슷한 일을 겪은 수요자들이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를 예상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부 오판이었다.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서울 집값은 높은 편에 속한다. 국가와 도시의 자산가격과 생활비용 등을 비교할 수 있는 넘베오에 따르면 20일 기준으로 서울 도심 아파트 매매가는 3.3㎡당 5220만원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프랑스 파리보다 높다. 주택 형태와 통계 방식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 상하이 도심은 3.3㎡당 5154만원, 대만 타이베이도 3.3㎡당 4534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22.18로 상하이(40.99)나 타이베이(29.5)보다 낮은 수준이다. PIR이 22.18이라는 건 대출 없이 가구소득으로 집을 구매하는데 약 22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집값이 높긴 하지만, 소득에 견주면 상하이나 타이베이 정도의 집값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집값이 무작정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으나, 3.3㎡당 1억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내세워 시장을 인위적으로 잡으려는 정부 태도가 더 염려스럽다. 민간 분양가 상한제의 부작용은 이 정부 임기 이후에서야 드러날텐데 그때가 되면 실책의 책임은 누가 질까. 강남 잡기에만 몰두한 정부가 자충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진혁 부동산부 기자(kinoe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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