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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강경화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고노 ‘내 소관 아니다’ 사실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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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악화 속에 양국 외교 수장이 테이블에 마주앉았지만 서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1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의 회동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고노 외무상은 수출 규제 조치는 외무부가 아닌 경제산업성의 소관이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일본 측이 한국에 취한 경제 보복 조치를 중단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강 장관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해 일본 측에 확답을 주지 않은 채 회담을 끝냈다. 고노 외무상이 강 장관에게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인지 물었으나, 강 장관은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아직 검토 중’이란 원론적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중국 베이징 중심지에서 약 140km 떨어진 관광지 구베이수이전(古北水鎭)의 구베이지광 호텔에서 현지 시각 오후 2시(한국 시각 오후 3시)부터 약 35분간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외교부는 양국 장관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강제징용 문제, 한반도 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고노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곽 구베이수이전의 한 호텔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 위해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35분간 이어졌다. /교도·연합뉴스


강 장관은 회담 초반 일본 측에 이달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해당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2일 각료 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후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버렸다.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일은 오는 28일이다.

강 장관의 요구에 고노 외무상은 수출 규제는 경제산업성의 일이란 기존 입장만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이 끝난 후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사실상 한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거부라고 말할 순 없다"면서도 "일본 외교 당국과 수출 규제 당국인 경제산업성이 구별돼 있기 때문에 (고노 외무상이) 그 부분을 장담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당국자는 "경제산업성이 최근 수출 규제 철회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기 때문에 현재로선 양국 수출 규제 당국 간 대화를 복원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이번 한·일 외교 수장 회동은 지소미아 연장 기한(24일)을 사흘 앞두고 열렸다.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 악화에도 지소미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사실상 지소미아 연장 여부가 한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어 이번 회담에서 지소미아 연장 여부와 관련해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관심이 쏠렸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이 지소미아 문제를 먼저 꺼냈다. 이에 강 장관은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아직 검토 중이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연장된다. 90일 전 어느 한 쪽이라도 파기 의사를 서면 통보하면 협정이 자동 종료된다.

이날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서울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지소미아 연장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실장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겠지만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나라와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류하는 게 맞느냐는 측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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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맨왼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가운데)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중국 베이징 외곽 구베이수이전의 우전회 호텔에서 제9차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를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이징 특파원 공동취재단


전날 열린 한·일 외교 국장급 회의에서도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의 국장급 협의에서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검토 중이란 입장을 밝혔다.

회담에선 일본의 대(對)한국 경제 보복의 원인으로 작용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처리 문제도 언급됐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국제법(한·일 기본조약) 위반이란 주장을 되풀이하며 한국 정부에 법위반 시정을 요구했다. 강 장관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담장엔 고노 외무상이 먼저 등장했지만 비공개 회담이 끝난 후에는 강 장관이 먼저 나왔다. 강 장관은 굳은 표정으로 회담장 밖으로 나왔고 ‘지소미아 연장과 관련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란 취재진 질문에 "네"라고만 답했다. 이어 ‘회담 분위기는 어땠나’ ‘지소미아가 연장되나’란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한 후 자리를 떴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 장관의 표정이 전체적인 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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