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하강 우려에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 16조7000억 달러 ‘역대 최대’
스위스·독일 30년 만기 국채 마이너스, 오스트리아는 100년만기 0.75%
초저금리 이어지며 ‘유동성 함정’ 위험도, 글로벌 경제의 ‘일본화’ 배제 못해
유럽연합(EU) 집행위 본부.EU 웹사이트 캡처 |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전 세계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년물 국채금리보다 낮아진 데 이어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30년 만기 국채 금리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적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21일 블룸버그와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채권 금액은 16조7000억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주 들어 마이너스 금리 채권 규모는 소폭 감소했지만 16조 달러 내외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채권의 대부분은 유럽 주요국과 일본은행(BOJ)이 발행하는 국채다. 일본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하락했고 스위스와 독일의 경우는 30년 만기 국채까지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100년 짜리 초장기 국채가 0.75% 금리로 발행됐다.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채권은 만기까지 갖고 있더라도 투자 금액보다 받는 돈이 줄어드는 채권이다.
마이너스 금리 채권은 2014년 6월 유럽중앙은행(ECB)이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마이너스 정책 금리를 도입하고 자산 매입을 확대하면서 확산됐다. 2016년 12조2000억 달러에 달했던 마이너스 금리 채권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경기 호조 등의 영향으로 감소했지만 최근 경기둔화 압력이 커지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7월 말 기준, 미국을 제외할 경우 전 세계 투자등급 채권의 43%가 마이너스 금리일 정도 급증하고 있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면 손실을 보는데도 왜 마이너스 금리 채권에 수요가 몰릴까?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매입하는 가장 큰 이유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는 점을 꼽는다. 현실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보관할 수 없는 은행이나 연기금은 원금 손실의 위험이 적은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감도 마이너스 금리 채권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만기 전 금리가 추가적으로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해 마이너스 금리로 채권을 매입했다 할지라도 차익을 남기고 채권을 매도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처럼 결국 중앙은행이 더 비싼 가격에 채권을 매입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기둔화 우려가 확산되면서 추가적으로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늘고 있다”며 “채권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너스 금리 현상은 회사채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로존에서 현재 투자등급 채권의 약 30%가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고 있다. 일부 투기등급 채권까지 마이너스 금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권도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투자위험이 크고 수익률이 높은 투기등급 채권이 마이너스 금리에 거래되는 것은 2016년 ECB가 양적완화(QE)를 시작하고 미 장기금리가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던 당시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경제주체에게 예상보다 경기가 부진하다는 신호로 인식되면서 결과적으로 경기활성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미래의 자본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소비보다 오히려 저축을 늘리게 되는‘유동성 함정’ 위험이 증가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조달비용이 제로수준임에도 유럽 기업의 M&A 활동이 줄고, 은행예금이 증가하는 것은 정책효과가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강조했다. 권 연구원은 “미 연방준비은행의 예방적 성격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저물가와 경기침체 위험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에는 향후 미국까지 제로금리 상황에 봉착하면서 글로벌 경제의‘일본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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