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韓日 외교장관 회담… 입장차 재확인, 악수 않고 헤어져
강경화, 지소미아 연장 질문 받고 "드릴 말씀이 없다" 자리 떠
이날 회담은 오후 2시 베이징 외곽 한 호텔에서 열렸다. 오후 2시 35분쯤 고노 외상은 회담장에 먼저 나와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지만 아무 말 없이 현장을 떠났다. 뒤이어 나온 강 장관 역시 입을 꾹 다물고 굳은 표정이었다. 강 장관은 '(회담에서) 지소미아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수초간 대답하지 않다가 "네"라고만 했다. 이어 회담 분위기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묻는 후속 질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자리를 떴다.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오른쪽) 일본 외무상이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9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두 장관은 이날 35분간 양자 회담을 갖고 강제징용·수출규제 등을 논의했지만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입장 차만 확인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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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은 이날 고노 외상을 상대로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한 데 대해 재차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은 상황의 엄중함을 지적하며 지금이라도 조치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일본 측에 촉구했다"고 했다. 강 장관은 또 양국 수출 규제 당국 간 대화가 조속히 성사돼야 하며 이를 위해 일본 외교 당국이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고노 외상은 즉답은 피한 채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일본 정부 주장을 되풀이하며 조속한 시정을 요청했다고 NHK는 보도했다.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관련해선, 고노 외상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강 장관은 "검토 중"이라고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장관은 이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전하고 일본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절한 결정을 촉구했다.
회담 끝 무렵, 고노 외상은 최근 격화한 양국 갈등으로 인한 한국 내 일본인들의 안전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을 요청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양측은 회담 시작 전 카메라 앞에선 손을 잡았지만, 회담 후에는 악수하지 않고 곧장 뒤돌아 헤어졌다. 베이징 소식통은 "양측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다 끝났다"면서 "다만 양측이 앞으로 계속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자는 데는 공감해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전했다.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 주최 측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심비심(將心比心 자기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비교하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일 양측이 서로 관심사를 배려하고 건설적으로 이견을 해결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청와대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오는 24일 시한이 만료되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베이징 회담에서 "여전히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청와대 기류는 사실상 '연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대일(對日) 압박 카드로 지소미아 폐기가 고려됐지만, 한·미·일 협력을 강조한 미국의 요청 등으로 인해 정부 기류가 '지소미아 연장' 쪽으로 최근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미·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의 안보 협력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지소미아 폐기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최근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고위 당국자들이 방한해 우리 정부에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며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면서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대일 압박 카드로 계속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포토]강경화-고노 35분 만남…지소미아 접점 못 찾아 "드릴 말씀 없어"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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