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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나이 올리면 성범죄 해결될 거라는 낙관적 시각 경계” [탐사기획 - '은별이 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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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아이들을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각 차이일 뿐입니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하느냐는 문제인 거죠.”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부정적인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아동의 ‘사랑할 권리’를 국가가 어떻게 정할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나이’에만 치중할 경우 오히려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점이 은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중론자들은 ‘연령 상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식의 낙관적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동의 연령 기준만 상향한다고 우리 사회 아동·청소년 성범죄 구조가 고쳐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만약 16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 이상 연령 청소년들의 성범죄 피해는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성범죄를 연령만으로 따지게 되면 자연스레 아이들한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고, 결국 성인 피해자는 ‘소외’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아이들을 성적 권리 행사의 주체가 아닌 ‘국가가 보호할 대상’으로 축소시킨다는 점도 문제”라며 “(우리나라 성범죄 구조의) 근본적 원인은 현행 형법의 ‘강간죄’가 폭행·협박만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제강간 연령을 조금 올리더라도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연령 기준을 너무 올리면 자칫 서로 호감을 느끼는 청소년들 간의 자연스러운 관계마저 ‘성범죄’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령 기준이 높아질수록 “외모가 성숙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가해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아동복지법 등 다른 법률을 통해 이미 아동을 충분히 보호하고 있다는 반론 또한 적지 않다.

청소년 일부도 부정적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16년 의제강간 연령 상향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반대 입장을 냈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입법 과정에서 청소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사회가 청소년의 성적 행동을 혐오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청소년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느냐”, “왜 아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어른들이 만드느냐”고 반박했다. 향후 연령 상향 논의가 본격화하면 아동·청소년의 시각도 반영돼야 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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