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한일 간 첫 군사협정…2012년 '밀실처리' 비난에 불발
2016년 11월 기형적 형태로 속전속결 체결…효용성 둘러싸고도 의견 분분
[연합뉴스TV] |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1945년 광복 이후 한일 양국이 맺은 첫 군사협정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결국 2년 9개월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그 이유로 안보문제를 제기한 이후 지소미아 협정 유지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끝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군 안팎에서는 정부가 한일 간 안보 갈등을 우려하는 미국을 의식해 당분간은 지소미아의 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그 같은 예상을 깨고 결국 '종료카드'를 선택한 것은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를 내세운 경제보복 조치를 완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국의 민감한 군사정보가 오가는 지소미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6년 11월 23일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체결 |
◇ '밀실처리' '매국' 비난 속 탄생한 지소미아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한 2급 이하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 할 보안 원칙들을 담고 있다.
상대국에서 받은 군사비밀을 해당 국가에서도 비밀로 보호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은 '군사 Ⅱ급 비밀', 군사 Ⅲ급 비밀'로 비밀등급을 표시해 일본에 주고, 일본은 '극비·방위비밀, 비(秘)'로 분류된 정보를 한국에 제공한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2차례 자동 연장돼왔다. 협정 연장시한 90일 전 어느 쪽이라도 파기의사를 서면 통보하면 종료된다. 청와대는 재연장 시한(8월 24일) 이틀을 남겨놓고 결국 파기를 선택했다.
한일 간 지소미아 체결 논의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에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협정 논의가 재추진됐다.
특히 2012년 6월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밀실 추진' 논란이 제기돼 무산됐다.
지소미아 재추진이 결정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16년으로, 북한의 핵실험과 잇따른 탄도미사일 도발 속에 한·미·일 안보 공조 필요성이 크게 부각된 시기였다.
취재거부하는 사진기자들 |
미국은 북한 견제뿐 아니라 대중 봉쇄전략 차원에서도 한일 양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 공조, 이를 통한 긴밀한 한·미·일 3각 안보공조를 필요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 체결 과정은 지금까지도 큰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협정은 재추진 선언 27일 만인 2016년 11월 23일 일사천리식으로 체결됐다.
서둘러 서명을 하려다 보니 당시 가서명 과정에서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과 주한 일본대사가 서명 주체로 참여하는 기형적인 모습도 만들어졌다.
당시 국방부는 협정 서명식도 비공개로 진행했고 '졸속 협상', '매국 협상' 등의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공군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피스아이 |
◇ 3년간 29건 정보교류…효용성 평가도 '극과 극'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의 대북 대응을 외교적 차원에서 군사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됐지만, 이 협정의 효용성을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려왔다.
양국의 대북 감시·정보능력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한국은 백두, 금강 정찰기를 통해 평양 이남에서 군사분계선(MDL)까지의 군사시설에서 발신되는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각종 영상정보(시긴트·SGINT)를 수집한다.
고위급 탈북자나 북·중 접경지역에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해놓고 있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6기와 1천㎞ 밖의 탄도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탑재한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천㎞ 이상의 지상 레이더 4기, 공중조기경보기 17대, P-3와 P-1 등 해상 초계기 110여 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일 양국은 지소미아 체결 이후 최근까지 모두 29건의 정보를 교류했다. 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 2019년 7건 등이다.
한국은 일본에 북한에서 발사된 각종 탄도미사일 정보를 주고, 일본은 북한 잠수함 기지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동향,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분석 결과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日, 한반도 감시 정찰위성 발사 |
군 당국은 대체로 지소미아가 유용한 것으로 평가해왔다. 대북 정보출처가 다양해지는 만큼 더욱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 측에 제공하는 정보들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대응이라는 측면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반면 일본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각종 탐지자산을 둔 한국과의 정보공유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은 한국군의 레이더에 거의 실시간으로 포착된다.
[그래픽]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대북정보 제공 개요 |
◇ 현 한일관계서는 연장됐더라도 '사문화' 가능성
그동안 한일 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해온 미국은 이번 갈등이 안보 분야로까지 확전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해왔다.
지난 9일 첫 방한한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장관은 정경두 장관과의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사실상 '지소미아 유지' 입장을 피력했다.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한미일 3각 안보 공조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점점 촘촘해지고 있는 '대중 포위망'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면서 종종 한미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축),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에 비유해왔다.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증원 병력과 군사 물자의 중심적인 통로가 되는 만큼, 북핵견제라는 측면에서도 한일 간의 군사정보 공유는 꼭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한일관계에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설령 지소미아가 1년 더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협정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양국 간에 최소한의 신뢰 관계마저 깨진 상황에서는 의미 있는 정보 교환이 이뤄지긴 불가능 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한미일 해상훈련에 참가한 조지 워싱턴호 |
군 내부에서는 협정은 유지하되 한국 정부가 일본의 정보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폐기와 동일한 효과를 내는 방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결국 이런 예상을 깨고 지소미아의 틀까지도 완전히 해체하기로 결정한 것은 당분간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일본의 최근 보복 조치에 대해 "양국 간 안보 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게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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