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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걸어 다니는 한국 문단사' 강민 시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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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인 추모시 상재

원로 강민(본명 강성철) 시인이 2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공군사관학교와 동국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62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물은 하나 되어 흐르네’,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나보다’, ‘미로(迷路)에서’, ‘외포리의 갈매기’와 공동시화집 ‘꽃, 파도, 세월’,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를 펴냈다.

세계일보

문단원로 강민 시인이 향년 83세를 일기로 22일 별세했다.


공동 산문집 ‘우리는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도 있다. 전쟁과 분단, 독재로 이어진 현대사를 몸소 체험하며 삶의 애환과 고통 및 저항의 노래를 불렀다. 시 동인지 ‘현실’과 드라마 동인 ‘네오 드라마’에 참여했다.

고인은 ‘학원’을 비롯해 ‘주부생활’ 편집국장, 금성출판사 상무이사 등 출판계에 몸담았고 많은 문인과 교류해 ‘걸어 다니는 한국 문단사’로 불렸다. 윤동주문학상, 동국문학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고, 발인은 24일 오전 10시30분. 문인장(文人葬)으로 치러진다.

다음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맹문재 안양대 교수가 보내온 조시(弔詩)이다.

인사동 시인 ― 강민 선생님께

노시인은 인사동을 걸을 때마다

경안리 주막에서 오십년 팔월 하룻밤을 함께 묵고 헤어진

같은 또래의 북한군을 그리워했다

전쟁터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친구들

저승 문턱까지 끌고 갔던 포성과 추위와 배고픔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미로도 떠올렸다

그때마다 손을 잡아준

강제 철거된 광희동 판잣집의 어머니

미장일에 지쳐도 왜놈 망하는 꼴 보고 죽겠다던 아버지

동오리의 울타리에서 웃고 있는 아내

민주의 불씨 찾으라고 지어준 아들과 조카의 이름 일민중(一民衆)

청년기에 만났던 명동의 예술가들과 외상을 주던 술집 주인들

4․19혁명에 앞장선 학생들과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들

중앙정보부를 따돌리고 만난 투사들

그리하여 인사동의 귀천과 유목민과 포도나무집과 국수집을 거쳐

촛불이 타오르는 광장으로 갈 때마다

노시인은 노래했다

물은 속이지 않네

산은 속이지 않네

동반은 속이지 않네

축복의 역사여서 다만 그리울 뿐이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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