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나자 어떤 풍경 하나가 떠올랐다. P선생을 만난 그 길의 풍경이 아닌, 예전에 살았던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던 풍경이었다. 흑백의 돌로 채워가는 바둑판처럼 하루가 다르게 고층아파트가 들어차는 시의 외곽에 작은 과수원이 고집스레 버티고 있었고, 과수원 옆구리에는 곁방살이하듯 푸성귀를 심어놓은 텃밭이 있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과수원 울타리 앞 인도에 내놓은 예닐곱 개의 의자였다. 어느 집에선가 내다버린 것 가운데 쓸 만한 것을 옮겨다 놓았는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줄로 늘어서 있는 의자들은 하나같이 짝이 맞지 않고, 조금씩 망가진 모양새였다. 과수원 울타리에는 의자만큼이나 모양새가 제각각인, 역시 조금씩 망가진 예닐곱 개의 거울액자가 야외미술관의 설치 전시물처럼 띄엄띄엄 걸려 있었다.
누가 그 의자를 거기에 놓아두었을까. 누가 그 거울을 거기, 딱 사람 눈높이만 한 위치에 걸어두었을까. 햇살 속에서도, 장맛비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자, 거울이라니. 그 딱딱한 사물의 경이로운 침묵이라니.
그 도로 앞을 지나다니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누군가 거울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의자에 앉아보거나,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 앞을 지나다니기만 했다. 일부러 길을 돌아 그 앞을 지나기도 했다. 이해 따위에 매이지 않는 기다림과 계산하지 않은 배려와 옹졸하지 않은 여유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졌다. 그럴 때면 어렸을 적에 듣던 노랫말을 웅얼거렸다.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
그날 P선생에게는 잠시 머물러 쉬어갈 의자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내게, 우리 모두에게 의자와 거울이 놓인 그 풍경처럼 고즈넉한 온기가 필요한 것처럼.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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