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소미아 파기를 '우려' 수준 넘어 '미군에 대한 위협'으로 봐
트럼프에겐 동맹관계도 '돈거래', G7서 한미훈련 무용론 펼쳐
美고위관리 "트럼프 행정부, 앞으로 한국에 더 강하게 나갈 것"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판이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지난 22일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 직후 '강한 우려와 실망'이란 이례적인 반응을 내놨던 트럼프 정부가 25일 다시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시하며 '미군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연계시켰다. 단순한 '우려' 수준을 넘어 '미국과 미군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을 방어하는 것을 더 복잡하게 하고 미군 병력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를 미군에 대한 위험, 즉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이란 관점에서 본다는 뜻이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의 트위터는 미국 현지 시각 일요일인 25일 오후 5시 15분쯤 올라왔다. 한국의 월요일 오전 6시 15분에 해당한다. 주한 미 대사관도 오전 10시 33분 이 트위터 내용을 번역해 올렸다. 오테이거스가 굳이 일요일 오후 더 강화된 입장문을 낸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서 새로운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시간에 맞춰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국이 거듭 '실망'을 강조한 배경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이 일회성 입장 발표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 담겨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25일 본지에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한국에 더 강하게(tougher) 나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밀담 나누는 트럼프와 아베 -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가 24일(현지 시각)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UPI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미 동맹이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주한 미군이라는 존재는 한·미 동맹의 실체이자 구체적인 내용이다. 최근 한·미 양국에서는 이런 한·미 동맹의 실체를 뒤흔들고 공격하는 사안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G7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 중인 프랑스에서 또 '한·미 연합 훈련 무용론'을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는 "그(김정은)는 한국이 '워 게임(war game)'을 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면서 "만일 여러분이 진실을 알고 싶다면 나 또한 그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완전한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도 '돈 낭비'란 관점에서 본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책 '공포'에선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에 35억달러나 쓸 이유가 있느냐. 철수시켜라, (주한미군) 필요없다'고 한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에도 "언젠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다"고 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5배의 증액을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으로 이미 한·미 동맹의 매듭은 여기저기서 풀려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지소미아까지 파기하며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을 흔들자 미국은 '미군에 대한 위협'을 들고나왔다. 더 위험해진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방위비 분담의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도 있다.
올 상반기 워싱턴의 싱크탱크 회의에 가장 자주 등장한 토론 주제는 '한·미 동맹의 미래'였다. 동북아의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이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 토론보다 동맹의 현실은 더 빠른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한·미 동맹의 실체에 해당하는 주한미군 주둔, 한·미 연합 훈련, 지소미아 등이 이미 다 축소·중단·파기됐거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안보 전문가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비즈니스 거래 관계로 보고 있고 김정은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끈질기게 요구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 세 지도자가 추구하는 바가 교차하는 그 지점이 한국 안보의 위기와 불운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강인선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