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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베트남전 학살의 아픔 치유하며 ‘평화 씨앗’ 키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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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제주작가회의 회장 이종형 시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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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베트남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는 탄타오(73) 시인은 지난 11일 이종형(64)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이렇게 불렀다. 저녁 무렵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시에서 열린 ‘제주-꽝응아이 시 낭송의 밤’에서였다. 1979년 시집 <초원을 건너는 발자국>으로 베트남작가회의 ‘최고문인상’을 받은 탄타오 시인이 지난해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로 ‘5·18 문학상’을 받은 이 시인을 부르기에 적절한 호칭이다.

하지만 ‘친구’라는 말에는 두 시인 사이의 개인적 우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 바로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경험한 베트남과 전투병을 보냈던 한국이 그 아픔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자는 소망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2008년 서울 온 베트남 시인의 증언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증오비’ 있다”
곧바로 꽝응아이성 방문해 현장답사
종군기자 출신 탄탄오 시인 등과 인연
8번째 ‘제주-꽝응아이 시 낭송의 밤’


“두 시인 우정처럼 닫힌 마음 열기를”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금기에 가깝다. 1999년 <한겨레21> 통신원이던 구수정 ‘한-베 평화재단’ 상임이사의 용기 있는 보도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구 상임이사가 현지조사를 통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80여 마을에서 벌어져 9천여명이 희생됐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 뒤 구 상임이사 등을 중심으로 ‘베트남 평화기행’을 진행하며 민간 차원의 사죄와 화해의 움직임이 계속돼왔다. 평화기행단은 베트남 중부 학살 현장을 찾아가 위령제를 지내고 학살 피해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전면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인은 이런 상황에서 2008년부터 두 나라 문인들의 교류를 통해 이 문제와 관련한 화해 실마리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시작은 2008년 여름 서울 국제문학 행사에 참여한 베트남 찜짱 시인(1938~2011)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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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도에 온 찜짱 시인을 통해 베트남 꽝응아이성에 한국군 학살과 관련한 ‘증오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시인은 동료인 김수열 시인 등과 함께 곧바로 그해 12월 베트남을 방문했고, 찜짱 시인의 소개로 꽝응아이성이 고향인 탄타오 시인과 처음 만나게 됐다. 베트남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탄타오 시인은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뒤 고향 꽝응아이성에서 계속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이 시인과 탄타오 시인을 중심으로 제주와 꽝응아이 문학 교류가 시작됐다. 모두 15명의 한국 작가회의 소속 시인들과 5명의 꽝응아이 작가회의 시인들이 참여한 이번 ‘제주-꽝응아이 시낭송의 밤’이 8번째 행사다.

그간의 교류를 통해 탄타오 시인은 ‘제주 진혼굿 무당’ 등 제주 4·3의 아픔을 보듬는 시를 짓고, 이 시인은 베트남 학살을 소재로 ‘눈과 손’ ‘카이 카이 카이’ 등의 시를 내놓았다. 지난 2015년에는 <낮에도 꿈꾸는 자가 있다>라는 제목의 제주-꽝응아이 공동시집도 펴냈다.

제주 시인들은 베트남을 방문할 때마다 여러 가지 교류 프로그램과 함께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등 학살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에 대한 추모 행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초 제주작가회의 회장이 된 이 시인은 그동안 제주작가회의 사무국장, 제주문학의집 사무국장으로서 이 교류사업을 주도해왔다.

이런 노력들이 과연 한국인과 베트남인을 ‘친구’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이 시인은 “그렇다”고 답한다. 사실 문학은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거짓을 드러내고, 아픔을 치유하는 구실을 해왔다. 권력이 꽁꽁 감추고자 했던 제주 4·3학살만해도 1978년 현기영 작가가 계간 <창비>에 중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한 이후 비로소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났다.

이 시인은 제주와 꽝응아이 시인들의 노력도 ‘화해와 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시인은 우선 “두 나라 문인 교류를 통해 한국인과 베트남인들이 전쟁 때 벌어진 비극에 대해 보다 더 진지한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전의 학살이 고립된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20세기적 야만이 일으킨 전 세계적 문제라는 점을 환기시켜 성숙한 시민의식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인은 “더욱이 시로 승화시킨 학살의 아픔은 가해와 피해를 넘어 서로를 치유하고 닫혀있던 마음을 여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한국-베트남의 상황은 다르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가자’는 구호 아래 경제발전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도 어느 가까운 미래에 경제성장이 궤도에 올랐을 때, 과거의 문을 다시 열고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인의 말대로 “상처의 치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과거의 문은 정권이 닫고자 한다고 해도 닫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한-베트남 관계는 지금의 한-일 관계와 다를 수 있을까?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두 나라 시인들이 함께 심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담은 평화의 씨앗이 지금도 계속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꽝응아이(베트남) /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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