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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아이를 넷이나 키우는 행복이 뭐냐고요? 저랑 남편까지 끼면 3대3 축구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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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현수엽 복지부 보육정책과장 인터뷰

"13년간 손주 돌봐주신 시어머니 덕에 직장 다니면서도 넷 키울 수 있었어요

시댁·친정에도 아이 못 맡기는 요즘… 보육 시스템 갖춰야 저출산 문제 해결"

현수엽(45)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과장은 18세 첫째부터 7세 막내까지 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4남매 기르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 묻자, "바로 이런 행복"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줬다. 올 여름휴가 때 세 딸이 숙소에서 걸그룹 '블랙핑크'의 춤을 열심히 추는 모습이었다. "저랑 남편에 세 딸과 막내아들까지 운동장에 모이면 3대3 축구도 가능해요."

현 과장의 주요 업무는 어린이집 운영 방식 등을 개선하는 것이다. "저희 네 아이는 시어머니가 정말 힘들게 봐주셨거든요. 저희 아이들이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는 개인이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회적인 보육 시스템이 잘 갖춰지게 되면 좋겠어요."

현 과장이 공무원으로서, 그리고 언젠가 부모가 될 네 아이를 위해서 세운 목표다.

◇시어머니가 네 아이 키워준 '은인'

현 과장에게 최고의 우군은 '시어머니'였다. 현 과장은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 세종시로 이사하기 전까지 13년 가까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현 과장이 손주를 안겨 드릴 때마다 시어머니가 "아이들은 내가 봐줄 테니 너는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덕분에 현 과장은 첫째 딸부터 셋째 딸까지는 아이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귀했다. 2012년 막내를 낳았을 때만 출산휴가를 마친 뒤 육아휴직도 3개월 썼다.

조선일보

지난 6월 현수엽 과장 가족이 충남 공주 계룡산을 오르다 찍은 네 아이들의 사진. 현 과장은 “아이들 하나하나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고 했다. /현수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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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 시절 야근이 많았다. 어쩌다 정시에 퇴근해도 오후 7시 30분은 되어야 집에 도착해, 저녁 준비는 시어머니 몫이었다. 주말 아침에는 늦잠을 자다 시어머니가 아침 차리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깨곤 했다. 마음은 송구한데 몸은 물먹은 솜처럼 피곤해, '아프다고 할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다.

"매일 저녁 집 앞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온종일 애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니에 대한 죄송함 등으로 가슴이 무거워질 때가 많았어요."

◇"새로운 해법 찾아야 할 때"

네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 가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전부 다 그 집 애 맞나요? 친척 아이들도 데려온 거 아니고?" 그만큼 요즘에는 아이 넷을 키우는 부부를 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젊은 후배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현 과장 또래가 아이를 낳아 기르던 시절에 비하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복지 제도가 많이 확충됐다. 하지만 양가 부모에게 기댈 수 있었던 현 과장 또래와 달리, 요즘 후배들은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맡기는 것도 쉽지 않아 '누가 아이를 돌봐야 하나'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 고민을 풀어주는 게 현 과장이 맡은 업무다.

현 과장은 "이제 우리 사회가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갈수록 손주를 봐주는 것보다 자기 여생을 즐기길 원하는 어르신이 늘고 있어요. 더 이상 어르신들의 희생에 의존할 게 아니라, 좋은 보육 시스템을 마련해 아이 돌보는 부담을 줄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는 인생의 햇빛

현 과장은 "네 아이 돌보느라 정신없을 때가 많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요즘은 누나들이 막냇동생을 잘 돌봐준다"고 했다. 네 아이를 키운다고 애 하나 돌보는 부담이 무조건 네 배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돌보게 되는 걸 바라보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현 과장이 야근을 하거나, 서울에서 회의가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도 누나들이 막냇동생을 잘 챙겨주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고 했다.

현 과장은 "대학 입시 경쟁, 취업 경쟁을 겪는 젊은 세대를 지켜보면서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라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구나. 아이 낳는 게 두려워질 수 있겠다'고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다만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아이를 원해서 낳았다면 그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질 좋은 보육 서비스'가 제공돼 엄마들이 '아이 키울 만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저출산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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