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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추석에 이렇게 논다 ⑥ 기억을 불러들여라 도심을 걸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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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도시산책의 오롯한 즐거움

과거, 현재 사이 삐져나온 기억의 흔적들

한적한 도심 머리 비우고 떠돌아보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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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은 기억을 작동시킨다. 현재와 과거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과거로 저벅저벅 올라갔다가, 현재로 터벅터벅 내려오면서. 특별한 하강과 상승의 경험을 이끌어낸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동 역 11번 출구를 빠져나온다. 앞으로 조금 걷다가 오른쪽 길로 꺾어들어간다. 일제강점기 이래 부산의 옛 도심이자 금융기관 상가가 밀집했던 중앙동 거리. 죽죽 걸어 들어가면 용두산 쪽으로 가는 언덕배기 초입에 나타나는 ‘40계단’이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인들이 중앙동 근대거리와 광장을 조성하면서 생겼다고 추정하니 어언 100년까지 역사를 헤아린다. 일제강점기 중심가로 번화했던 시절과, 귀환동포들이 몰려든 해방 공간의 혼란기,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 피난시절의 힘든 기억은 물론이고, 중앙동, 영주동 토박이들의 유년시절, 60~80년대 도시 개발기의 파괴와 혼돈, 90년대 이후 도심 침체기, 2000년대 이후 도시재생기의 곡절과 요즘 찾아온 국내외 관광객의 일회용 일화들까지 다채로운 층위의 기억을 간직한 삶의 흔적 무대다.

기억의 한마당인 계단 주변은 2000년대 이후 이국적인 분위기로 정연하게 정비되었다. 난간과 아래 도로변의 주변 카페와 펍에서 울려나오는 낯선 재즈와 록음악들이 귀를 간지럽힌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눈길은 고달픈 삶의 흔적들을 풀어놓은 60여년전 피난민의 동상들과 노천 카페의 의자들을 보고 계단 위쪽의 영주동 주택가와 상가로 가는 고개마루를 향한다.

해방 이후로 여전히 다닥다닥 붙으며 형성된 난간집과 상가들이 그위에 있다. 조금더 올라가면 부산만의 도시 특징인 산복도로의 굴곡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옆동네인 광복동 남포동 거리로 들어가면, ‘941년과 44년 각각 지은 몇안되는 일제강점기의 초창기 아파트 맨션인 소화장과 청풍장을 볼 수 있다. 낡았지만 엄정한 디자인을 간직한 근대 주거의 유적이다. 또다른 광복동 골목의 낡은 건물엔 임시수도 당시 국립박물관이 피난갔던 임시사무실 건물이 여전히 폐허처럼 단면이 잘린 채 남아있다.

이 낯선 건축적 풍경을 찾는 서막이 바로 중앙동 40계단이다. 걸어올라가면서 과거 사람들의 한 순간을 상기해본다. 60여년전 이 계단 앞에서 눈앞 부두에 물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거나 잃어버린 가족을 찾던 피난민들, 1954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터전을 잃고 계단 주변에 모여 울부짖었던 이재민들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그보다 20~3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 이 계단 주변 길을 거닐던 부산의 일본인 유력자들과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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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기간 대도시의 도심은 오솔길처럼 호젓해진다. 도시를 산책하기엔 최적의 여건이다. 산책의 의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쉰다는 것. 산책자의 걸음으로 거리 곳곳의 건물과 골목 사이를 돌아다니는 건 낯선 경험을 안겨준다. 건물의 벽체 표면과 거리의 바닥, 골목 사이 과거의 흔적들을 통해 현재의 일상 사이에 가로놓인 시간의 틈을 관찰하고 생각을 곁들여보는 행위는 항상 새삼스럽고 흥미진진하다. 굳이 성찰하고 사유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퇴락하거나 허물어진 풍경을 보면서 생각 없이 느낌만 쌓으며 무턱대고 걷는 것도 울림이 있다. 필요한 건 그런 여유를 보장할 시간, 바로 우리가 선택하는 의지일 터다.

산책객은 서울 사대문 일부였던 옛 서대문 터 인근으로 가본다. 도시의 전혀 다른 과거와 부산한 지금의 일상 사이를 떠돌 수 있는 곳이다. 서대문 로터리에서 광화문으로 빠지는 신문로 큰 길로 올라간다. 경향신문 사옥을 끼고 정동으로 빠지는 샛길이 보이고, 그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서대문터 어귀를 알리는 표식이 붙어있다.

지금은 신문사, 병원, 금융기관, 시장이 인접한 전형적인 대도심이나, 19세기말과 지난세기초 이 돈의문 부근은 확연히 다른 성격의 공간이었다. 항구 인천에서 들어오는 사대문 첫 길목이어서 조선에 들어온 근대 문명의 첨단 유행과 문물이 가장 먼저 서울 장안에 선보이고 전파됐고, 서양인들 또한 거처이자 사업터전으로 가장 선호했던 지역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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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과거의 문이 최근 다시 등장했다. 요즘 문터 부근을 얼쩡거리면, 스마트폰에서 105년전 일제 당국에 의해 뜯겨 사라진 옛 서대문(돈의문)이 나타나곤 한다. 현재 거리의 여러 현대 건물과 도로 사이에 실물처럼 복원된 가상의 돈의문 모습이 뜨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이 함께 개발한 돈의문 에이아르(AR) 체험 서비스다.(물론 전용 모바일 앱을 깔아야한다.) 신문로 맞은편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시장에 술렁술렁 들어가보면 좀더 스케일 큰 가상체험도 가능하다.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작동시켜 조선시대 돈의문과 주변의 시장과 거리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여기까진 첨단 디지털 시각기술로 서울의 과거상을 색다르게 드러내는 눈요기다. 진정한 산책의 재미는 실제 공간을 걸어가면서 일상과 연결될 때 배어나온다. 돈의문터 안쪽, 그러니까 광화문 가는쪽 신문로에는 경희궁과 경운궁(덕수궁)을 잇는 큰 육교가 구한말 있었다. 그 아래로 전차가 지나다녔던 옛 육교의 연결부분이 씨티은행 사옥 옆 샛길 쪽이다. 이 길 따라 올라가면 곧장 정동 언덕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언덕 위에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유명한 옛 러시아공사관의 2층 탑 잔해가 최근 지어진 상림원이란 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서있다. 그 일대가 정동공원이다. 공원에서 동쪽 덕수궁 돌담길을 향해 언덕의 능선을 타고서, 북쪽엔 옛 선원전터(경기여고터)와 남쪽에 주한미국대사관저 담장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이 닦아 개방한 이른바 ‘고종의 길’이다. 1896년 경복궁을 빠져나온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숨어들어간 아관파천 때 이용한 통로일 것이란 설명이 애초 붙여졌으나, 확실하게 고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작명했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그해 정말 고종이 경복궁에서 이 길을 거쳐 러시아 공사관에 갔는지는 지금도 확실하게 아는 이가 없다. 신문로에서 덕수궁돌담길까지 내처 걸어가는 도심 산책은 그래서 과거의 흔적이 내포한 갖가지 회상과 추정, 알려진 기억의 진실성 등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이 된다. 신문로와 서대문, 덕수궁, 정동을 감싸고 도는 흔적과 현상들은 과거를 얼마나 담고있는가, 복원된 공간들이 말하는 과거는 정말 정확한 것인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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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지난 60여년간 전쟁과 압축성장을 거치면서 공간에 과거를 투영하거나 새기는 기록을 남기는 데는 인색했다. 스스로 겪은 삶의 흔적들을 애써 기억하거나 보존하는 것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목포, 대전, 광주 같은 이땅의 도시 곳곳에 오늘날도 그간 눈여겨보지 않은 기억의 흔적들이 무수히 남은 채 삭아가거나 허물어지고 있다.

도시산책자의 개념을 근대 지식인의 화두로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는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이다. 유년시절부터 파리와 베를린의 도심 거리와 상가 아케이드를 끊임없이 방랑하면서 기억과 흔적에 대한 사유를 길어올렸던 사상가다. 군중 속에 녹아들어가 도시문명을 치열한 사유로 헤집어 보며 기록한 이 만보객은 프랑스 파리를 관찰하고 남긴 미완성 원고 <아케이드프로젝트>에 이런 구절을 남겼다. “시간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시간을 내쫓는 자는 바로 도박꾼이다. 그의 전신에서 시간이 샘솟는다. 마치 배터리가 에너지를 충전하듯이 시간을 충전하는 자, 이는 산책자이다.”

이번 연휴기간 시간의 기억을 불러들이는 도시산책자가 되어 보길 권한다.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멍하게 있거나 머뭇거릴 수 있고, 때론 진지하게 성찰할 수도 있는 발걸음으로 말이다. 머릿 속을 휘익 열어 놓고 거리와 건물, 과거와 현재 사이를 활보하는 감흥을 느껴보시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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