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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세계의 창]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 / 존 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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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미국은 태평양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있다. 미국이 이 지역에 거대한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볼 수 없다. 좋든 나쁘든 동아시아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질서는 끝나가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배적인 경제 주체가 되었고,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자체적인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평화헌법의 제약을 깨왔다. 한국은 최근 미국이 3국 협력의 초석이라며 한국과 일본에 촉구해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연장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을 동아시아 경제·안보에 다시 개입시키기 위해 ‘태평양으로의 회귀’를 대대적으로 시도했으나 ‘회귀’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은 더 커진 중동 분쟁에 휘말렸고, 트럼프 행정부는 동아시아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세가지 주요 목표를 추구하면서 전후 질서의 종결을 서둘렀다.

우선 그는 시장 접근 등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응하도록 하고자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의 두번째 목표는 동맹들의 미군 주둔 비용 인상이다. 올해 초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약 8% 더 부담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일본에도 주일미군 주둔비 인상과 고가의 미국 무기 대량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세번째로, 트럼프는 북한과 ‘딜’을 원한다. 그러나 그런 합의는 더 큰 동아시아 목표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그저 전임자들이 못한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뿐이다.

미국은 스스로를 동아시아의 안정자로 묘사해왔다. 미국은 일본이 대규모 군사력을 갖지 못하게 제한해왔다. 또한 한-일 사이에 영토·역사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두 나라의 정책들을 하나로 조정하려 했다. 미군의 동아시아 배치는 또 다른 헤게모니의 부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이 이 지역에 있어도 더 이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전면적 군비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게 한 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군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국방예산을 7.5% 인상했다. 한국도 진보적인 문재인 대통령 집권하에서 2019년 국방예산을 2008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인 8.2% 올렸고, 2020~2024년에는 연평균 7% 이상의 증액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아래 군비 지출이 2013년 이후 13% 증가했다. 일본은 1대에 1억3천만달러가 넘는 F-35B 전투기 6대 등 미국 무기 구입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뒤 구축한 동아시아 질서는 평화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라는 두개의 전쟁 위에 세워졌다. 또 주둔지 일대에 폭력을 증가시킨 수백곳의 군사기지에 의존했다.

하지만 동아시아 질서는 명백한 결점들에도 국수주의 과잉을 막는 구실을 했다.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 영향력에 대한 경고음은 국수주의 부활과 겹친다. 일본이 가장 명백한 사례다. 일본이 전쟁 때 저지른 행동에 대해 한때 극단주의로 받아들여지던 시각이 아베 신조 덕분에 지금은 주류가 됐다. 중국도 시진핑 아래에서 훨씬 명확한 국수주의 국가가 됐다. 한국의 국수주의는 주로 통일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남북평화 경제로 일본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다’고 단언한 게 한 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들은 이들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국수주의적이다.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동아시아 국수주의에 불을 붙였고 군비경쟁을 가속화했다.

아시아에서 미국 영향력의 축소는 유럽에서처럼 지역 내 평화·협력 기구들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는 반대로 경쟁과 갈등을 키웠다. 미국의 근시안적 정책들 때문에 동아시아는 매우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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