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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청나라와 영국의 경상수지 불균형이 없었으면 홍콩 시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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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달 31일 홍콩 정부청사 인근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가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홍콩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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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13] 최근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사태가 확대돼 '혹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홍콩 문제 역시 홍콩으로 반환되고 본토와 갈등이 생기면서 여러 힘이 복잡하게 작용해 빚어진 결과다. 다소 비약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청나라 시절 중국의 지나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무역 불균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19세기 영국의 부유층은 청나라의 도자기, 비단, 차를 좋아했고, 이로 인해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사치품을 수입했다. 이는 고스란히 영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영국 은(銀)이 청나라와의 거래에서 지불 수단으로 넘겨진 것이다. 당시 청나라 물품들이 영국에서 유행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국 상품은 청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런 무역 불균형을 만회하기 위해 영국은 청나라에 아편을 수출한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은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청나라는 영국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편 전쟁에 패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99년간 할양(割讓)하기로 합의한다. 물론 영국이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아편을 수출하고, 무력으로 영토를 차지한 행동은 19세기 야만적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 가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시 극단적인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도록 청나라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했다면 사태가 파국으로 가는 결과는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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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달러(아래쪽)와 중국 100위안 지폐.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함에 따라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워싱턴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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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환율조작국에 관한 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정부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거나 의심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 독일, 한국, 일반, 대만, 스위스다. 2015년 미국의 교역촉진법에 따라 제정된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3% 이상, 통화당국이 GDP 대비 2% 이상 달러화를 매수한 국가다. 이 요건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해당될 경우 미국 정부는 해당 국가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수출국 정부의 환율 개입 여부를 예의 주시한다. 또, 위의 세 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하는 국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실제적인 제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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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부터 대미 경상수지가 300억달러 이상이며,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7%를 넘어 미국의 예의 주시하는 환율관찰대상국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을 대상으로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들은 얄미운 국가일 수 있다. 그러나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들은 환율 정책과 관련된 세 번째 조항만 제외하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실질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장사를 잘했다'는 칭찬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신중상주의적인 사고의 결과일까.

일반적으로 경상수지와 환율 역시 다른 거시지표들과 단기적으로는 변동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균형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그 나라의 완전고용 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실업률보다 실제 실업률이 높으면 임금이 하락해 실업률은 적정 수준으로 하락하게 된다. 금융 분야 역시 적정 이자율보다 실제 이자율이 높으면 저축은 증가하고 대출은 감소해 실제 이자율은 균형으로 하락한다. 경상수지도 특정 국가에서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면 수출국의 화폐 수요는 증가해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가 외환시장에서 상승한다. 해당 외환시장에서 화폐가치가 상승하면 해당 국가의 수출량이 감소해 경상수지는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가령 우리나라가 미국으로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많이 판매하면 같은 시기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게 된다. 그러면 외환시장에서 원화 수요와 달러화 공급이 증가해 원화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돼 원화가치가 달러당 1000원에서 900원으로 상승하면 미국에 수출하던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된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100달러에 상품을 팔면 100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 원화가치가 달러당 900원으로 상승하면 전과 같이 100달러에 물건을 팔아도 90만원밖에 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수출기업이 자연스럽게 달러로 표기된 가격을 인상하게 되면 이에 따라 수출량은 줄어 경상수지 흑자는 감소하게 된다. 이처럼 특정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면 외환시장에서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는 상승해 자연스럽게 수출액은 감소하고 경상수지는 균형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년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위안화, 원화, 엔화가치가 외환시장에서 상승하지 않고 제자리거나 오히려 하락하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환율조작국에 관한 일련의 조치들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과 같이 경상수지 적자가 매년 누적되면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현상은 국가 경제에 항상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거시 경제에서 총수요를 증가시켜 경기 진작으로 이어지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0년대 시작된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소위 '잃어버린 20년'이 발생하게 된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꼽고 있다. 1980년대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은 수출 물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고 경상수지 흑자는 확대됐다.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는 일본 경제를 과열시키고, 물가를 급격히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일본에 버블 경제가 발생하는데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도 일조한 것이다. 또,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외환시장에서 엔화 강세를 가져왔고, 이는 일본 경제 구조를 대기업 위주로 편중되게 만들었다. 국립 히토쓰바시(一橋)대의 후카오 교지(深尾京司) 교수는 '잃어버린 20년과 일본경제'라는 그의 책에서 1990년대 경제 버블이 붕괴되자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과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는 일본 경제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가계나 기업 같은 경제 주체들의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가정의 통장 잔액이 계속 늘어나고, 기업의 순자본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시 경제에서 지속적인 흑자는 경상수지 적자와 같이 균형에서 벗어난 또 다른 비정상적인 상황이고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글로벌시대' 국가 간 협력과 분업이 과거 어떤 때보다 중요해졌다. 통상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과거 중상주의식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균형을 찾아가고 교역국들이 서로 윈윈(win-win)하도록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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