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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오일쇼크 공포 확산…“걸프전 이후 30년만에 가장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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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폭격 후폭풍…브렌트 한때 20% 폭등

WTI도 16.5% 치솟아

미 비축유 방출로 수그러들어

사우디 생산능력 회복에 촉각

에너지장관 “몇주 걸릴 것”

NYT “비축량 평소보다 많고

수요 줄어 불행 중 다행”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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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석유시설 두 곳이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은 직후 국제 원유가격은 개장하자마자 순간 발작하며 한때 20% 가까이 폭등했다. 약 30년 전 제1차 걸프전쟁 발발 때와 맞먹는 일간 최대 상승폭이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유가 비상이 걸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전략비축유 방출에 들어가는 등 진화에 다급히 나섰다.

그러나 이란, 예멘 반군, 사우디 왕실 그리고 미국 사이의 지정학적 분쟁이 격화하면서 석유시설 추가 공격 및 사우디와 미국의 합작 보복 행동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어 유가 급변동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전세계 원유공급 최후 보루를 자임해온 사우디의 명성에 큰 손상이 발생했다. 이번 핵심 원유시설 공격으로 글로벌 원유시장의 급소가 노출됐다”고 진단했다. 야흐야 사리 예멘 반군 후티 대변인은 16일 트위터에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시설이 여전히 공격 대상”이라며 “공격이 언제라도 계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15일(현지시각) 대표적인 원유 지표인 북해산 브렌트유(11월 인도분 선물가격)는 주말을 끝내고 일요일 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 시장이 열리자마자 배럴당 71.95달러로 치솟으며 거래를 시작했다. 직전 영업일 종가(배럴당 60.22달러) 대비 무려 19.4% 폭등한 것으로,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이후 가장 높은 하루 중 상승률이다. 그 뒤 거래가격은 점차 안정세를 되찾아가며 65~68달러 선에서 거래를 지속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유(WTI)도 이날 장이 열리자마자 전날 종가(54.80달러) 대비 16.5% 치솟은 배럴당 63.89달러(11월 인도분 선물가격)로 수직 급등했다. 개장과 동시에 가격 이상급등으로 서킷브레이커(매매 정지)가 발동됐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 이후 최대 폭등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원유공급의 심각한 부족사태 직면에 겁을 집어먹은 원유 트레이더들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며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원유가격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제프리스의 애널리스트 제이슨 가멜은 “이번 공격은 유례없는 공급 충격으로, 가까운 시일 동안 극도의 원유가격 폭등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 에너지 전문가 에이미 마이어스 재피는 “며칠 동안 70년대 유가폭등기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지금 목도하는 건 한두개 오일 파이프라인이나 쉽게 복구할 수 있는 저장탱커가 아니라, 원유산업의 급소나 다름없는 (사우디) 정맥이 위협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브렌트유 및 텍사스유 가격이 개장 직후 폭등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나는 전략비축유(SPR)의 방출을 승인했다. 필요한 경우 시장에 잘 공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비축유는 6억4천만배럴(9월 첫째 주)로, 사우디의 생산 차질이 30일쯤 이어질 때의 생산량 감소분(1억7천만배럴)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도 “사우디와 주요 원유 생산국, 그리고 원유 소비국들과 접촉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시장에 충분한 상업용 비축유가 있다”고 발표하며 유가 폭등세 진정에 나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대변인도 이날 “영국 경제당국이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와 공조하고 있다”며 비축 원유 방출에 동참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축유 방출 대책이 나오면서 유가 폭등세는 다소 수그러들었으나, 시장은 사우디가 이번 공격 이전의 하루 생산능력을 과연 언제쯤 회복할 수 있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우디의 에너지장관 측근은 “원유시설을 최대 생산량 수준으로 충분히 끌어올리려면 몇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파괴된 공급량을 회복하려면 사우디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의 다른 산유국들을 상대로 단기 시장안정을 위한 생산 증가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원유가격 폭등으로 산유국들은 당장 뜻하지 않은 횡재를 얻게 된데다 이미 오펙 국가들은 원유 감산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 이 합의를 어기는 쪽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 셈이다. 사우디와 미국이 비축 물량 활용과 다른 생산시설 풀가동을 발표했음에도 이날 시장이 즉각 요동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생산량 회복에 대한 전망을 넘어, 원유 트레이더들을 더 공포에 떨게 하는 건 전세계 공급의 70%를 담당하는, 원유의 최종적인 안정적 공급자로서 사우디의 위상이 이번 공격으로 크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의 원유 컨설팅회사인 라이스타드에너지는 “이번 공격으로 시장이 주말 동안 완전히 뒤집어졌다. 걸프전쟁 이후 3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사태다. 중동의 원유공급 상황이 취약해지면서, 지난 5년간 국제유가를 낮춰온 미국 셰일오일 붐에 따른 ‘충분한 원유공급’ 인식도 이제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우디 왕실이 그동안 유가 통제력을 더 강화하려고 시도해온 터라, 공식 발표와 달리 실제로는 다른 생산시설의 완전가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면서 시장을 혼돈과 두려움에 몰아넣고 있다.

다만 <뉴욕 타임스>는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공격은 전세계 원유 비축량이 평소보다 많고, 세계 경제 둔화로 원유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며 단기적 충격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협회가 16일 개최한 석유수급 점검회의에서 “원유 선적 물량·일정에 아직 큰 차질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관이 함께 보유하고 있는 전략비축유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억배럴로, 당장 수급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계완 최하얀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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