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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산소미포함 3: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 같은 복제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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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53]

◆'산소미포함'의 주인공, 복제체들

게임 '산소미포함'의 가장 큰 미덕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할 일거리와 함께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의 제공임을 우리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었다. 난이도와 그에 맞설 수 있는 적절한 숙련도의 발휘 공간이 함께 제공되면서 플레이는 본격적으로 유의미한 즐거움의 줄타기를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게임의 본질적 측면에서의 이야기였다면 '산소미포함'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게임의 중심에 자리한 캐릭터, 복제인간이다.

듀플리컨트라고 이름 붙여진 캐릭터들은 복제체로 번역된다. 이들은 실제 인간처럼 움직이고 나타나지만 엄연히 인간과는 다름을 게임은 처음부터 꾸준하게 묘사한다. 한글 번역판 기준으로 이들은 정확히 복제체라는 이름을 달고 게임 안에서 활동하며, 인간이라는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복제체가 지향하는 복제의 원본은 인간이다. 이들은 머리와 팔다리를 가지고 직립보행하며, 인간이 하는 일들을 인간처럼 수행한다.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호흡과 식사, 용변 같은 기초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까지도 분명 인간의 행위로 나타난다. 비좁은 공간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내부 환경의 개선인데, 그 과정에서 이따금 특출난 예술성을 가진 복제체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은 이게 무슨 복제체인가, 인간 이상인데! 같은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체는 인간은 아니다. 이들은 실제 인간보다는 작은 크기로 제작되었으며, 인간보다 적게 먹고 적게 호흡하면서도 월등한 운동량을 보인다. 한 번에 200㎏이 넘는 물건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80도의 수증기에 노출되어도 화상은 금세 회복된다. 어지간한 일로는 감염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으며, 최악의 상황에도 가급적 플레이어의 지시가 아니면 자기 생존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인 듯 인간 아닌 인간 같은 너,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산소미포함' 속의 복제체는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 아닌 존재로 게임에 등장한다. 그렇다고 단순한 작업 기계만으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복제체는 인간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생활환경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인간과 인간 아닌 작업기계의 미묘한 중간지점이 '산소미포함'이라는 게임의 중심에 자리하는 캐릭터가 위치하는 지점이다.

◆감정이입을 차단하는 복제체의 개념 덕분에

플레이하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산소미포함'의 복제체라는 설정은 게임의 중심에서 움직이는 대상을 주체가 아닌 제3자의 위치로 좀더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게임에는 아예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게임 속 복제체들은 명백하게도 인간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궁극적으로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체 시스템이지만 이들의 개별 작업은 미시적 차원에서 조금도 인간을 위하지 않는다. 정작 그들 자신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활동들이 '산소미포함'에서 주어지는 대부분의 도전과제들을 이룬다.

같은 회사의 전작이었던 '굶지마!'와는 다른 부분이다. '굶지마!'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주인공과 연결되면서 캐릭터의 생존이 곧 플레이어의 생존이 된다. 그러나 '산소미포함'에서 등장 캐릭터들은 플레이어의 지시를 따를 뿐인 복제체로 명기된다. 최악의 경우 그들 중 하나가 사고로 사망하더라도 플레이어는 그 캐릭터에 어떤 감정을 이입할 만한 건덕지를 받지 못한다. 게임은 사망한 캐릭터의 무덤과 묘비를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데, 이를 만드는 이유는 완전히 실리적인 차원에서라면 단지 시체를 볼 때마다 복제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삶이 직접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음으로써 '산소미포함'은 마치 어린이들이 이따금 과학실험놀이용으로 구입하는 개미집과 같은 시점을 취하게 된다. 실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하세계를 향하는 카메라워크는 정확하게 그 개미집의 시점과 일치한다. 개미집의 단면을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아이가 개미에게 갖는 딱 그만큼의 유대감으로 '산소미포함'의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복제체들의 일상과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에게 쌓여가는 온갖 잡일과 생존의 문제는 그렇기에 좀 더 쾌활하고 자유롭게 손댈 수 있는, 잡무가 아닌 해결가능한 도전과제로서의 의미로만 부여된다.

'산소미포함'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캐릭터의 묘비를 세우면, 동료 복제체들이 시신을 수습한 뒤 그 자리에 모여 다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타난다. 섬뜩하게도 이 복제체들은 한 번 모여서 울고 난 뒤 다시는 그 묘비에 모이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대단히 제한적인 복제체들의 표정 연출은 그 우는 모습마저도 뻣뻣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섬뜩한 것은 그 우는 모습을 함께 울지 않는 채 관찰하는 플레이어 자신의 모습이다. 울어야 할, 슬퍼야 할 건덕지조차 없는 채로 아이의 개미집처럼 관찰하는 소행성의 지하 생태계는 그 연출 자체로 개미집과 아이, 현장과 관리자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매일경제

복제체의 무덤 앞에서 다른 복제체들이 울면서 슬퍼하지만, 동시에 먹는 생각 아이콘이 뜨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이 슬픔에 개입하지 않는, 게임 내에 등장하지 않는 관리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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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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