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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3)부실한 싱가포르 합의에 무너진 ‘남북 공동의 대미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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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핵화 합의 무산

하노이 실패 후 북·미 대화 중단에 남북관계 올스톱 ‘후유증’

‘비핵화 진전보다 북·미관계 진전’ 한국의 조급증 버려야



경향신문

9·19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1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9 DMZ 페스타’에 전시된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3자회동 모형. 고양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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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평양 방문 결과물인 9·19 평양공동선언 및 남북군사합의에서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중요한 전기가 될 만한 중대 제안이 있었다. 남북공동선언 5조에서 동창리 미사일시험장과 발사대를 외국 전문가 참관하에 폐기하고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할 뜻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재재 완화 등을 교환하자는 제안이다.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에 담긴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남북 공동의 대미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제안으로 일시적 교착 국면에 빠졌던 북·미 대화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영변 핵시설 해체와 제재 완화의 교환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북·미대화와 남북관계가 중단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 제안 배경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미대화가 일시 중단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당시 북·미는 싱가포르 합의를 이룬 지 한 달 만에 합의 이행 방안을 놓고 충돌하며 대화가 중단된 상태였다. 문 대통령은 막혀버린 북·미대화의 ‘혈로’를 뚫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라는 카드로 미국과 북·미대화 재개의 접점을 모색하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합의한 것이다.

북한 핵동력의 산실인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비핵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었다. 비핵화 협상에서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지점까지 나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이 제안에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북·미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차 정상회담이 열리고 싱가포르 합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진전된 합의가 나오면 북·미 협상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 북·미 동상이몽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내주고 경제제재 완화를 비롯한 상응조치를 얻어내 싱가포르 합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가 미국을 만족시키는 데 충분한 카드일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최종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2차 정상회담을 한 달 남겨놓은 1월31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스탠퍼드대학 강연에서 비핵화 협상 최종목표에 대한 북·미 공통의 인식과 협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2월22일 미국 협상팀은 현지에서 콘퍼런스콜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공유된 이해 증진, 비핵화 로드맵, 그리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동결한다는 약속 등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영변 핵시설 해체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결국 일주일 뒤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 원점으로 돌아온 북·미

하노이에서 드러난 북·미의 입장 차이는 첫 북·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싱가포르 합의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익명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비핵화의 최종목표와 로드맵이 설정돼 있는 상태였다면 영변 핵시설 폐기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노이 실패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합의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하노이에서 북한에 요구한 내용들은 사실 싱가포르 합의에 다 포함돼 있어야 했던 것들이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보다 싱가포르 합의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를 구체화하려 했고, 미국은 싱가포르 합의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 했기 때문에 회담 실패는 필연이었던 셈이다.

■ 하노이 실패의 후유증

하노이 회담 실패는 영변 핵시설 폐기를 카드로 북·미 협상을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진입시키려던 남북 공동의 구상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하노이 실패 이후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미국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남측에 돌린 것이다. 하노이 실패는 북·미대화를 원점으로 되돌렸을 뿐 아니라 남북관계까지 올스톱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 후유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북핵 문제를 다뤘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미 협상이 성공 못한 이유는 트럼프의 미숙한 협상 방식과 북한의 정세 파악 실패가 원인이지만, 비핵화진전보다 북·미관계의 빠른 진전만을 추구했던 한국 정부의 조급함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시리즈 끝 >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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