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선 동해로 명기...한국과 일본의 다툼과 유사 中-베트남 경제밀착에도 양국 관계 최대 위협요인 수천년 이어진 역사적 배경에 기인...최근 베트남도 목소리 높아져 파라셀, 스프래틀리 군도 핵심 대립지역...통킹만 해역경계도 잠재요소
국제정치 현실주의 관점에서 영토 문제는 국가이익과 직결되는 사활적 문제다. 중국은 '남중국해(南中國海)', 베트남은 '동해(BIỂN ĐÔNG)'라고 부르는 이 바다를 둘러싼 갈등은 중국과 베트남뿐 아니라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이 얽혀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이는 마치 동해를 둘러싼 일본과의 대립과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두고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우리의 사정과도 유사하다.
◆베트남, ‘남중국해' 표기 중국산 장난감 전량 회수
최근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최대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쇼피(Shopee)에 대해 즉각적인 조사에 나섰다. 베트남 공안당국은 중국산 장난감 제품을 전량 압수하고 이미 판매한 제품은 모두 환불 조치하도록 했다.
문제가 된 제품은 어린이용으로 제작된 동물 캐릭터로 유명한 중국산 장난감이다. 세계지도에서 깃발을 꽂는 장난감은 3세 이상 어린이들이 48개국의 국기와 지리적 위치를 학습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지도에는 베트남이 중국과 영해분쟁을 벌이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군도가 남중국해로 표기돼 있었다.
지도에 남중국해가 표기되 베트남 내에서 문제가 된 상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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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비자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놀랍도록 빠르고 단호한 조치로 이어졌다. 베트남 공안당국은 즉각 쇼피의 온라인 거래사이트에서 이 제품의 이미지를 제거하도록 했다. 이 제품 항목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물론 이미 판매한 제품은 전량 회수하고 이미 확보하고 있는 제품도 압수조치 했다.
또 쇼피는 이번 제품을 판매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해당제품과 관련된 조치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응우옌후투안 쇼피 전자상거래 관리팀장은 현지 언론에 "하노이의 판매자를 찾아가 중국 장난감 컨테이너 30대 분량을 압수조치 했다"며 “품질 및 제품정보에 대한 판매원 교육 및 홍보 역시 강화할 것을 요구 받았다”고 말했다.
◆분쟁 지역에 매장자원 풍부...中 인공섬 건설하고 해군주둔, 베트남도 인공섬으로 ‘맞불’
남중국해 문제에서 베트남과 중국의 핵심적인 쟁점 지역은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군도다. 스프래틀리 군도는 중국명으로 난사(南沙), 베트남명으로는 쯔엉사(TRƯỜNG SA)이며, 파라셀 군도는 중국명으로 시사(西沙), 베트남명으로 호앙사(Hoàng Sa)다.
남중국해 하이난 섬 아래 열도 형태로 펼쳐져 있는 이 지역은 면적이 124만9000㎢, 바다의 길이 약 3000㎞. 너비 1000㎞, 수심은 4000m에 이른다. 최대수심은 필리핀 루손섬의 북서쪽 5420m다. 바다의 북단은 타이완해협으로 동중국해와 연결되며 중국 하이난섬 외에 중국명으로 둥사(東沙) ·시사(西沙) ·중사(中沙) ·난사(南沙) 등 4개 군도가 산재한다.
사실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군도 모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은 거의 없다. 하지만 광대한 대륙붕에 매장된 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관문으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협이기도 하다.
중국은 남중국해 해변을 따라 U자 형태로 이른바 구단선(9개선)을 그어 이 지역의 85% 이상을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약 25~30개의 인공섬을 건설한 뒤 중국은 군사 기지화해 베트남을 포함해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 인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베트남도 인공섬을 건설하며 자국 군인을 상주시키고 해군력을 투입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은 1974년과 1988년 파라셀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문제가 다시 불거진 건 5년 전부터다. 당시 중국 석유시추선이 베트남이 영해라고 주장하는 지역에서 시추 작업을 진행하면서 양국 선박이 충돌했다. 베트남에서 반중 시위가 확산되면서 베트남과 중국의 긴장이 1979년 전쟁 이후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올해 7월에는 중국 지질국 소속의 석유탐사선 하이양디지(Haiyang Dizhi) 8호가 베트남이 EEZ(배타적경제수역)라고 주장하는 베트남 영해 대륙붕을 또다시 침범했다. 베트남 내 반중시위가 다시 가열되고 양국 간 긴장상태가 조성됐다.
특히 이번 사태는 미·중 무역분쟁과 맞물려 국제적으로 조명을 받기도 했다. 미국은 즉각 중국의 강압적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일본 또한 일본과 베트남을 비롯한 다른 여러 국가에 동해는 매우 중요한 해역이라며 중국이 동해에 긴장을 유발시키는 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베트남 반중집회 |
베트남 외교부는 “중국의 하이양디지 8호가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 수역과 대륙붕에 침범했다“며 ”베트남의 영해에서 베트남의 허가 없이 영해를 침범하는 행동을 즉각 종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스스로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며 “오히려 역외 국가(미국, 일본)들이 분쟁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결국 당시 2주간 대치하던 양국은 하이양디지 8호가 대륙붕 탐사를 중단하고 중국 경비함 3척과 베트남 경비정 9척이 철수하면서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중국백서’ 발간한 베트남...경제협력 가속화에도 갈등은 이웃국가의 숙명
베트남과 중국의 통킹만 해역경계 설정, 영해 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스토리’와도 같다. 역사적으로 도서 지역 분쟁을 둘러싼 국가 간의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된 바가 전무하다.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포틀랜드 전쟁, 터키와 그리스의 키프로스 분할 등 이미 수많은 전례가 있다. 남중국해 문제도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이미 판결을 내렸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79년 3월, 중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정부는 중국을 비판하는 ‘중국백서’라는 정부간행물을 발간했다. 1982년 제5차 베트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중국을 ‘베트남 인민의 직접적인 적’이라고 한 것을 상기하면 당시 양국관계가 얼마나 불신에 가득찼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국경을 1200㎞나 공유하고 중국과 1000년 이상 대립을 겪어온 베트남은 중국의 전략적인 위협에 가장 내성이 높은 국가로 평가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중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응웬 쑤언 푹 베트남 국가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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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머이(개방) 이후 베트남 정부는 1990년대 중국과 국교관계를 회복하고 전략적 협력관계로 격상하면서 이에 걸맞은 협력을 중시한다는 기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역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경제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부터는 중국의 베트남 투자가 전체 해외투자액(FDI)에서 1위로 올라섰을 정도다.
하지만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밀월관계를 꿈꾸는 양국은 여전히 ‘영해 분쟁’이라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국제정치무대에서 역사적으로 미해결된 쟁점들은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갈등이 반복돼왔다.
주목할 건 베트남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영토문제에서 있어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지난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으며, 내년 아세안 의장국으로 내정돼 있다. 베트남은 이 같은 외교적 역량을 바탕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국제적으로 계속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
중국 또한 자국의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타국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양국의 영해분쟁에서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양국의 전격적인 합의가 없는 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굴기와 베트남의 세력 확장이 맞물리면서 영해분쟁은 쉽게 사그라들기 힘들다는 전망이다. 좋든 싫든 국경을 맞대고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웃국가의 숙명인 셈이다.
김태언 기자 un7stars@ajunews.com
김태언 un7stars@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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