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화성 사건 후 창고 보관 중이던 증거물 7월 재감정 요청
1991년 日서 DNA 분석했지만 실패… 이젠 극소량으로도 가능
국과수 8월 9일 용의자 통보… 남은 증거물서도 DNA 확인 중
1994년 처제 살해 혐의 조사받는 이춘재 -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오른쪽 점선)가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이춘재는 이 사건으로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결국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중부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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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경기 오산경찰서에 30년 안팎 기간 동안 보관 중이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증거물을 가져와 7월 15일 강원도 원주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식을 요청했다. 총 10차례 사건 가운데 9·10차 사건의 증거물이 먼저 넘겨졌다. 현장에 남겨진 모발과 피해자 거들, 팬티, 시신 훼손에 사용된 면도칼 등이었다. 서중석 전(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증거물이 오래됐다 하더라도 DNA 채취는 가능하고, 거기서 나온 좌위(유전자 정보) 일부가 누락될 수는 있을지언정, 아예 변형되어 다른 사람 것으로 오인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 당시에는 유전자 정보 분석에 실패했지만, 이후 기술이 발달한 만큼 다시 시도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재감정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처음 발생했던 1980년대 후반은 세계적으로도 DNA 수사가 일반화되지 않은 때였다. 경찰에 따르면, DNA 수사 기법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 개발됐고, 국내에는 1989년 도입됐다. 이 사건 증거에 대한 DNA 분석은 1991년에 일본 연구소에서 처음 이뤄졌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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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DNA 수사 기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재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1ng(나노그램)의 DNA도 증폭해 감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예전엔 DNA 확보를 위해 많은 시료가 필요했지만, 이젠 극소량으로도 가능하다. 개개인 DNA가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일명 '마커')을 초기엔 3~4개까지 구별할 수 있었지만, 최근엔 20개까지 구별할 수 있다. 증거물을 훑어내 DNA를 채취한 뒤, 이를 증폭(增幅)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경찰이 국과수에 보낸 증거물은 라면 박스 여러 개 분량이다. 첫 물꼬는 제9차 사건 현장에 있던 거들 분석에서 터졌다. 1990년 11월 15일 오후 5시 30분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가던 중 성폭행·살해당한 14세 여중생의 거들이었다. 거기에 묻어 있던 체액에서 검출된 DNA 정보가 대검찰청 교도소 수형자 데이터베이스의 DNA 정보와 일치한 것으로 나왔다. 강간살인범 이춘재였다. 국과수는 8월 9일 이러한 사실을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5·7차 사건 증거물도 추가로 감정을 의뢰했고 잇달아 동일한 DNA가 발견됐다. 경찰은 아직 보관 중이던 증거물을 국과수에 다 보내지 못한 상태다. 5개 현장의 증거물이 분석 대기 중이다. 앞으로 이춘재의 범행이 추가로 확인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찰은 왜 이제야 DNA 분석에 나섰을까. 이에 대한 경찰 공식 입장은 "금년부터 각 지방청 중심 수사 체제 구축 계획에 따라, 주요 미제 사건에 대하여 지방청 미제수사팀 총괄하에 필요한 수사 절차를 다시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경기남부청 미제사건팀은 7월 초 오산서로부터 수사 기록과 증거 일체를 넘겨받아 본격 재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6~7월 용의자에 대한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됐고, '오래된 증거물에서도 DNA 채취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감정을 의뢰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간부는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난 미제 사건이어서 급하게 처리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좀 더 빨리 재감정이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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