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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조사했는데"…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수사망 어떻게 빠져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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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모(56)씨를 과거에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가 수사망을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과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관계자들은 이씨를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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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 씨가 24년째 수감돼 있는 부산교도소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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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24일 "과거 수사기록에서 당시 이씨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씨를 어떤 사건으로 몇 번 조사했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냈다.



"용의선상에 없었던 인물"



이씨는 당시 경찰에겐 중요 인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오래 추적한 하승균(73) 전 총경은 "이씨는 당시 용의선상에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이씨가 화성에 살았다면 당연히 조사했을 텐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이씨가 조사를 받았던 것은 당시 '화성군(현 화성시)'에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의 본적지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으로 이곳에서 태어나 1993년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태안·팔탄 등에서 1~10차(이중 8차는 모방범죄)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당시 조사한 용의자만 2만1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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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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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사는 남성들은 모두 경찰의 표적이 됐다고 한다. 지난 23일 진안동에서 만난 한 남성은 "당시 '낯선 사람이다' 싶으면 전부 경찰이었던 것 같다"며 "동네 남자들은 물론이고 저쪽 공장 다니는 사람들까지 다 경찰이랑 얘기해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범행이 모두 진안리 반경 10㎞에서 이뤄졌다. 2·6차 사건은 이씨의 본적지인 태안읍 진안리에서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1·2·3·6차 사건은이씨의 집과 그가 일했던 태안읍 안녕리의 한 전기설비공장 근방에서 발생했다.

더욱이 이씨는 1990년엔 수원지법에서 강도예비와 폭력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화성에 살고 강력범죄 전력이 있는 이씨를 경찰이 소홀히 여기진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용의자는 B형이라는 경찰 확증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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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5차 사건 현장 살펴보는 경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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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씨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혈액형'때문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찰은 4·5·9·10차 사건 범인의 정액과 혈흔·모발 등의 감정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당시 DNA 분석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혈청학적 방법으로 감정했는데, 그마저도 혈액이 아닌 감정물들이다.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다. 그가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항소심 판결문엔 "범행 현장에서 수거된 모발 중 피고인(이씨)의 혈액형과 같은 O형의 두모 2점, 음모 1점 등이 나왔다"고 적혀 있다. 이씨가 당시 경찰의 의심을 샀어도 다른 혈액형으로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씨는 2~3차례 수사선상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혈액형이 다르고 특별한 증거도 없어서 경찰이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혈액형에 집착한 정황은 이씨가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1994년 충북 청주서부경찰서(현 청주흥덕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을 당시에도 드러난다. 청주 경찰이 이씨의 화성 본가를 압수 수색을 하자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팀은 "이씨를 조사하고 싶으니 화성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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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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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주 경찰이 "직접 데려가라"고 하자 수사팀은 더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씨의 처제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김시근(62) 전 형사는 "화성 경찰에서 찾은 건 혈액형 B형의 용의자였는데, 우리가 채취한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며 "혈액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성수사본부가 청주로 내려와 공조수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집착했던 B형 혈액형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의뢰로 화성의 현장증거물을 조사한 결과 사건 당시 물품에서 채취된 성분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감정물에서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용의자의 DNA를 분리했다"며 "용의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시료가 체성분이 오염이나 혼합됐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혈액형은 용의자를 추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며 "당시 수사팀으로서는 국과수가 혈액형을 잘못 분석했다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목격자 수소문



이씨는 24일 있었던 4차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9명을 동원해 이씨를 조사하는 한편 과거 수사 기록 등을 다시 분석하고 있다.

또 7차 사건 당시 용의자와 마주쳐 수배 전단 작성에 참여했던 버스 안내양과 9차 사건 당시 피해자인 김모(14) 양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양복을 입은 20대 남성이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전모(당시 41세)씨 등 목격자들을 찾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최모란·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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