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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불붙는 OTT 시장

넷플릭스 타고 ‘에미 상’…성인이 즐길 애니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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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조선일보

경기도 부천 사무실에서 만난 배기용 레드독컬처하우스 대표./이민아 기자


9월 22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TV 프로그램 시상식 중 최고 권위의 ‘에미 상’에서 한국의 애니메이션(이하 애니) 제작사 ‘레드독컬처하우스’ 소속 직원의 이름이 수상 명단에 올랐다. 이 회사의 김준호 팀장이 애니 배경 디자이너 부문에서 개인 공로상을 받은 것이다. 그에게 상을 안겨준 작품은 레드독컬처하우스가 제작에 참여한 넷플릭스의 단편 애니 시리즈 ‘러브, 데스+로봇’이다. ‘러브, 데스+로봇’은 올해 3월 15일 넷플릭스 독점으로 공개된 성인 대상 애니다.

넷플릭스가 기획한 ‘러브, 데스+로봇’은 미국의 대형 애니 스튜디오 ‘블러 스튜디오’가 제작을 총괄했다. 각각 6분에서 17분 길이의 단편 애니 18편으로 구성돼 있다. 블러 스튜디오는 각 회차의 시나리오와 세계관을 구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여러 애니 제작사에 외주 제작을 맡겼다. 블러 스튜디오가 상상한 세계관을 가장 잘 구현해 줄 수 있는 애니 제작사들을 고른 것이다. 레드독컬처하우스도 그 외주 제작사 가운데 한 곳이었다.

레드독컬처하우스가 블러 스튜디오로부터 수주해 제작한 작품이 ‘굿 헌팅’이다. ‘굿 헌팅’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2D(2차원) 애니다.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던 구미호가 힘을 잃은 후 온몸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아 ‘사이보그 구미호’가 되고, 남자들을 사냥한다는 내용이다.

레드독컬처하우스는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공룡 기업을 만나 그간 갈고닦은 역량을 발휘했고, 세계 무대로 올라섰다. 레드독컬처하우스는 넷플릭스와 작업 전엔 넥슨, 블리자드 등 게임 관련 애니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아동용 애니가 주를 이룬다. 사실상 고사상태인 한국 애니 시장에서 그나마 수익을 낼 가능성이 큰 분야가 아동용 애니이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 중 ‘뽀로로’나 ‘라바’ 같은 유명한 아동용 작품은 있지만, 성인 대상 애니 중 널리 알려진 작품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에서도 레드독컬처하우스는 ‘성인들이 즐길 만한 작품성 있는 애니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지키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이코노미조선’은 2014년 창업 후 회사의 색깔을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는 레드독컬처하우스의 배기용 대표를 8월 5일 경기도 부천 사무실에서 만났다. 언뜻 봐도 180㎝를 훌쩍 넘는 키에, 듬직한 체구였다. 한국에서 2017년 1월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 ‘모아나’의 주인공과 인상이 비슷해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애니 제작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면서 겸연쩍은 듯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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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독컬처하우스가 외주 제작사로 참여한 ‘러브, 데스+로봇’의 ‘굿 헌팅’. 온몸을 로봇으로 대체한 사이보그 구미호가 등장한다. /레드독컬처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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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인가.

"지금은 글로벌 애니 시장에서 경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애니 제작사에 투자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넷플릭스와 다른 작품 제작도 논의 중이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작품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에 우리 회사 이름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도 우리 회사 이름을 찾아내 팬레터를 보내는 팬들이 생겼다. 사이보그 구미호 모양으로 타투를 하고 싶은데, 도면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메일도 기억에 남는다. 혹은 소설가가 연락해 자신의 시나리오를 애니로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넷플릭스와 협업 과정이 궁금하다.

"2017년 4월에 이 작품을 총괄 연출한 미국의 블러 스튜디오에서 페이스북 메신저를 받았다. 블러 스튜디오가 자신들이 구상한 세계관을 잘 구현해 줄 소규모 스튜디오를 찾아 외주 제작을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의 작품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아무 연락이 없는 거다. 우리 회사 포트폴리오에 일본풍 작품이 많았는데, 이 느낌을 원하지 않았나 보다, 싶었다. 기다리다가 ‘잘 안 됐나 보다’ 하고 포기했는데, 4개월 후인 8월에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다."

‘굿 헌팅’ 제작 기간은.

"1년이 걸렸다. 당시 회사 직원 수가 40명 정도였는데, 전 직원이 모두 달라붙어 작업했다고 보면 된다. 블러 스튜디오 측에서 전체 에피소드를 조율하는 등 이런저런 절차가 있어서 예상보다는 작업 기간이 길었다. ‘굿 헌팅’은 15분 길이로 재생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만약 밀도 있게 작업했다면 길게 잡아도 5개월 정도 걸렸을 것이다."

‘굿 헌팅’에 필요한 제작비는 얼마였나.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기는 어렵다. 평소 받는 제작비의 3~5배쯤이라고만 하겠다."

국내 제작 환경은 열악하다고 들었다.

"그렇다. 대부분 정부 지원 사업에 의존한다. 최근 ‘뽀로로’ ‘라바’ 등 아동용 애니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분위기가 좀 바뀌기는 했다. 많은 제작사가 ‘아동용이 돈이 되는구나’ 하고 노선을 많이 바꿨다. 이마저도 10년이 채 안 된 이야기다."

성인용 애니의 상황은 어떠한가.

"최근 웹툰과 웹소설의 인기에서 성인 대상 애니의 희망을 본다. 웹툰·웹소설 원작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제작됐다. 그런데 큰 인기를 얻은 작품들 중 판타지나 공상과학(SF) 장르의 경우 드라마·영화처럼 실사 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투자금은 많이 드는데, 리스크가 아직 너무 큰 상황이다. 하지만 애니는 그보다 저렴한 제작비로 비교적 쉽게 웹툰·웹소설 원작을 영상 콘텐츠로 구현할 수 있다. 아직은 웹툰·웹소설 원작의 애니가 성공한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회사가 조금씩 그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

사실 세계적 ‘애니 왕국’은 일본인데, 일본 애니 제작사와 비교해 한국 애니 제작사가 갖는 강점이 있다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일본 제작사들은 많은 경우 ‘외주 제작’에 적합하지 않다. ‘애니 왕국’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외국 고객사와 갈등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매년 일본에서 나오는 신작 애니가 60~100편은 되는데, 이런 내수 물량을 소화하면서 외주까지 할 만한 인력이 부족하다고 들었다. 한 미국 애니의 경우, 시즌 1을 한국에서 만들고 시즌 2는 일본 제작사에 맡겼다. 그런데 시즌 2를 제작하던 중간에 일본 제작사와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고객사가 한국에 외주를 다시 넘겼다."

배기용은 누구?

배기용 레드독컬처하우스 대표는 강원 춘천기계공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말, 춘천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서울무비’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 ‘스튜디오 미르’에서 미국 애니메이션 ‘코라의 전설’의 스토리보드(story board·영상으로 제작하기 전 주요 장면을 스케치해 정리해 놓은 뼈대) 디렉팅과 연출을 총괄하며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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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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