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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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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화가 김용키 "조심 안 하면 나도 남에게 지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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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만화가 김용키가 `타인은 지옥이다` 그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종우(그림 제일 앞)가 지옥 같은 고시원에서 생존해 나가는 내용을 담았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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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키(본명 김용현·30)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는 누적 조회 수 8억회에 OCN 주말 드라마 리메이크판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화려한 성적으로만 표현해서는 진가가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다. 그보다는 밝고, 귀엽고, 경쾌한 것이 주류인 웹툰 시장에서 어둡고, 눅눅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주목받았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주인공 종우가 고시원에 살며 끔찍한 주변 이웃들을 대하다가 스스로도 점점 추악하게 변하는 이 웹툰에는 일각의 미화(美化)도 교훈도 없다. 지옥은 지옥처럼, 괴물은 괴물 그대로 그려낼 뿐이다. '인간 실격'을 쓰며 절망에의 도취를 보여준 다자이 오사무가 일본에서 데카당스(퇴폐주의) 문학을 이끌었다면, 김용키는 한국에서 데카당스 웹툰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하다.

최근 서울 용산구 네이버웹툰 작가 공간에서 만난 그는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고 했다. "작중 택시 기사가 성악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동물인 인간이 갖는 분노라는 감정은 본능과도 가깝다. 요즘 들어 갑자기 분노조절장애가 만연하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시스템이 잘 눌러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거다."

독자들이 이 작품에 열광한 건 사회 분위기 영향이 크다. 만화 속에 그려진 고시원 사람들은 연약한 고양이를 괴롭히고, 상대방 모르게 등에 침을 뱉고, 조금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죽일 듯 덤벼든다. 우리가 뉴스에서 빈번히 보는 분노범죄와 맥을 같이한다. 작가가 고시원에서 살며 살갗으로 느꼈던 이웃들 모습을 담았다.

"2012년 상경해서 반년 동안 은평구 고시원에서 살았다. 욱하는 성격을 가진 캐릭터 '204호'가 방구석 같은 데 서서 욕한 것, 건달 같은 등장인물이 라면 끓여 달라고 하는 장면은 실제 경험을 모티프로 삼았다."

주인공 종우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다. 연민하거나 옹호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웠을 텐데,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거리 감각이 돋보인다. 이웃이 종우에게 지옥이었던 것처럼 종우 역시 이웃에게 어떤 부분에서는 지옥이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히 드러난다. 고시원 생활 기간 김 작가도 조금은 피폐해졌을까.

"그런 공간에서 피폐해지는 건 누구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좁고, 방음이 안 되고, 다른 사람과 너무 가까이 닿아 있더라. 만화를 그리면서 나 자신도 남들에게 피곤한 존재로 느껴질 수 있었음을 돌아보게 됐다."

어렸을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울산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온 뒤 전공에 맞춰 디자인 회사에 다녔다. '네이버 도전만화'에 '타인은 지옥이다'를 올리던 그는 4회 차가 나갔을 때쯤 웹툰계 프리미어리그인 네이버웹툰에서 정식 연재 제안을 받고 "기분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고 회상했다.

작품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네시아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데뷔작이 개그 만화였던 만큼 차기작은 다시 개그 만화를 할 계획이었지만, '타인은 지옥이다'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재차 스릴러와 호러를 연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웹툰 작가 지망생에게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본인이 그린 것을 봤을 때 재미있고 몰입이 되면 남들에게도 좋은 반응이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하나만 꼽아달라고 요청했더니 골똘히 생각하다가 짧은 답을 남겼다. "남들에게, 서로에게 조심하자고요. 회사에서나, 공동생활에서나요."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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