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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외국어 남발에 우리말은 조사만 남을까 걱정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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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주 우리말지킴이 정혜인 대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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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필드, 체인지메이커, 오픈식, 굿즈…. 우리말 쓰면 안 됩니까? 그에 맞는 우리말이 없습니까? 너무 심하지 않나요? 무식한 사람은 몰라도 된다는 겁니까? ‘진행합니다’도 영어로 하지 그러셨습니까? 영어도 잘 아는 똑똑한 분들이 왜 우리말로 기발한 이름은 못 짓는 겁니까?”

생활 속에서 우리말 바로쓰기에 힘쓰는 교정전문가 정혜인(56)씨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우리말지킴이 ‘숨’의 대표를 맡고 있다. ‘숨’은 문화체육관광부(문화예술위원회 삼삼오오 인생나눔활동) 도움으로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공모한 지원사업에 뽑혀 활동하는 우리말 사랑 모임이다. 지난달부터 시작해 새달 초까지 매주 모임을 진행한다. 함께 우리말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앞으로 계속 모임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인들 사이 ‘걸어다니는 국어사전’
“국문학 전공자 아닌 사전 애독자”
회원7명 우리말 지킴이모임 ‘숨’ 대표
동네서점 ‘잘 익은 언어들’ 중심으로 활동


‘가든시티’ 등 전주시 외국어 남용에
‘국어책임관’ 두는 우리말 조례 추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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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전공자는 아니고, 국어사전만 꼼꼼히 봤다는 정씨는 억척스러울 정도로 우리말 쓰기를 고집한다. 외국어를 무문별하게 남용하는 공공기관에 전화해서 우리말 사용을 권고한다. 페이스북에 사례를 올려서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그런 열성으로 성과를 거둔 사례도 많다.

전주시가 ‘가든시티 전주를 만들기 위한 천만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가든시티’를 따져서 ‘정원도시’로 고쳤다. 또 전주역 앞 첫 마중길 사업을 위한 ‘워터미러’ 명칭도 ‘거울못’으로 바꿨다. 초등학교 사회과목 보조교재 <우리 고장 전주> 등 맞춤법 오기 70여 군데를 발견하는 등 전북 14개 시·군지역 교재를 수정하도록 했다.

“토착화한 외래어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 데도 ‘딜레이(연기)했다’, ‘캔슬(취소)됐다’, ‘핸들링(관리)이 잘 안 된다’ 등 영어를 습관적으로 남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는 외국어로 사업 주제를 내건 기관에서 담당 직원이 그 뜻을 제대로 모른 적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겨우 조사만 우리말을 쓸게 될까 걱정됩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너무 좋아해 이불 속에서 책상등 불빛으로 읽기도 했다고 한다. 10년 전께 우연히 김장을 소재로 쓴 수필이 장원에 뽑힌 그는 지인의 소개로 교정일을 하고 있다. 전주시의 홍보지 교정 등을 프리랜서로 맡고 있다. 그의 유별난 우리말 사랑과 직업의식 탓에 지인들까지도 띄어쓰기 등이 틀릴까 봐서 그가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 댓글도 달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의 집요한 노력 끝에 지난해 전주시는 우리말 조례를 만들기로 했다. 국어기본법에 따라 공문서를 작성해서 모든 시민들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도록 하고, 공공기관이 솔선해 외국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 국어책임관을 둬 모든 공문서의 오탈자를 바로 잡고, 시청 행사에서도 외국어를 지양하자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추진한 것은 2017년 한옥마을에서 열린 ‘전주 핸드메이드시티 위크’ 행사에서 비롯했다. 손으로 만드는 수제품과 관광 활성화를 접목하고자 열린 행사인데 제목부터 영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했다고 그는 비판했다. 그는 김승수 전주시장의 열린 마음 덕택에, 그의 지적을 잘 수용해줘 그나마 다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지역신문의 오탈자를 잡는 데도 힘쓰고 있다. 신문별 1면 오탈자를 집계해 비교표를 만들어 공개할까도 생각했으나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형용사에는 ‘는’을 쓰면 안 됩니다. 그래서 ‘걸맞는’과 ‘알맞는’은 아예 우리말에 없습니다. 신문기사에서 이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를 볼 때마다 괴롭습니다. ‘걸맞은’과 ‘알맞은’이 맞는 표현입니다. 독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신문기사는 절대로 틀리면 안 됩니다. 기자들이 제발 우리말 공부를 좀 했으면 합니다.”

우리말지킴이 ‘숨’의 회원은 그를 비롯한 동네서점 ‘잘 익은 언어들’ 책방 주인 이지선씨 등 회원이 7명이다. 이들은 앞으로 동물원 안내판도 다뤄 볼 계획이다. 특히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동물원 안내판 내용이 올바르게 적혀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잘 익은 언어들’에서 회의도 하고 계획도 세운다. 누구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년 전 동네서점을 연 주인 이씨는 “설익고 섣부른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는 글을 책방 안에 내걸어 두고 있다.

문자나 ‘카톡’할 때에도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사전을 찾는다는 정씨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국어사전’이다. 그는 자신의 소박한 꿈을 밝혔다. “나이를 먹어도 제가 좋아하는 교정일을 소신을 갖고 계속할 겁니다. ‘품격의 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에서 남용되는 외국어를 몰아내고 예쁜 우리말을 쓰도록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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