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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 만나기 직전에 뺄 거예요… 헤어롤 달고 활보하는 밀레니얼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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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길거리 헤어롤'의 사회 심리학

조선일보

노란색 헤어롤을 앞머리에 말고 셀카(selfie)를 찍은 트로트 가수 홍진영. 많은 여자 연예인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헤어롤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인스타그램

핏이 좋은 교복, 태그가 붙은 오프화이트 브랜드 운동화, 옅게 한 피부 화장과 립글로스. 여기에 노란색 '앞머리 헤어롤'.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등하굣길 여학생들 모습이다. 헤어롤은 머리카락 볼륨을 살리는 데 쓰는 미용 기기. 이정미(현 고려대 로스쿨 석좌교수) 전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 달고 출근했다가 '얼마나 긴장하고 바빴으면'이라는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킨 그 도구다.

정수리 볼륨용으로 사용한 이 교수와 달리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앞머리 볼륨을 위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화장할 때 머리에 말고 있다가 집을 나서기 전에 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이들은 헤어롤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걸까.

의미 없는 타인

"헤어롤은 최대한 오래하고 있어야 볼륨이 살아요."

버스에서 만난 한 여중생 말이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그녀는 학교 정문 앞에서 헤어롤을 뺀다고 했다. 교내에는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기 때문. 그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의미 없는 타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도 이런 시각에서 '길거리 헤어롤'을 접근한다. 그는 저서 '코끼리를 삼킨 사물들'에서 "요즘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구루프(헤어롤의 일종)를 머리에 달고 다니는 현상은 억압에 대한 발랄한 도전이자 뻔뻔함의 현상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이런 모습이 유행처럼 돼 버린 것은 10년 전 유행한 팬티가 보이도록 느슨하게 걸쳐 입는 힙합 바지나 브래지어 끈 노출 패션과 유사하다"고도 설명했다.

이는 최근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화장하지 않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변신하는 것도 비슷한 심리라고 말한다. 직장 동료는 의미 없는 타인, 퇴근 후 만나는 친구는 의미 있는 타인이라는 것이다. 한 20대 여성 직장인은 "화장은 여자답게 보이려는 목적이 큰데 사무실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는 일을 잘하고 싶지 여자로 비치거나 예쁘게 여겨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출·퇴근길에 변신하는 여성 직장인의 모습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잘 빠진 정장을 입은 이들은 출근할 때는 편리함을 위해 운동화를 신고, 사내에서는 단정한 구두를 신으며, 퇴근할 때는 저녁 약속을 위해 섹시한 힐로 바꿔 신는다. 화장도 출근 전후가 다르다. 만나는 상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미(美)의 기준

헤어롤을 단 모습이 미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관점도 있다. 헤어롤을 한 모습은 20세기 초반 유행한 미국 핀업걸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옅은 화장에 가운을 입고 헤어롤을 한 콘셉트는 남자친구의 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모습처럼 자연스러운 미(美)의 콘셉트 중 하나다.

이 때문인지 여자 연예인 소셜미디어에서도 헤어롤을 만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아이돌그룹 EXID의 하니, 산다라박, 트로트 가수 홍진영 등이 대표적이다. 샤워 가운을 입고 헤어롤을 만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룹 쥬얼리 출신 예원은 분홍색 헤어롤을 잔뜩 말아 올린 콘셉트로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헤어롤이 미용 기기뿐 아니라 패션의 느낌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분홍색뿐 아니라 검은색, 노란색, 하늘색 등 다양한 색깔의 앞머리 헤어롤이 출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분석하는 것도 기성세대의 시각일까. 버스에서 만난 한 여고생은 "그냥 편해서요"라고 말했다. 그는 "앞머리를 잘랐는데 계속 여드름이 생겨서 헤어롤을 하고 다닌다. 공부할 때도 헤어롤 말고 있으면 앞머리가 눈에 찔리지도 않고 편하다"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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