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3 (금)

[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로 만나니 더욱 친근한 '82년생 김지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2016년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2019년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으로 재탄생됐다.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소설 속 극적인 요소들이 자제되고, 이 영화 포스터처럼 밝고 따뜻한 느낌의 영상 속에 김지영의 일상이 담담하게 담겼다. 정유미(지영 역), 공유(지영 남편 대현 역), 김미경(지영 엄마 미숙 역) 등 화려한 출연진들도 딱 김지영과 김지영의 주변 사람들이 되어 등장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김도영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대로 ‘현실에 발이 닿아있는 영화’다. 관객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을 영화 속 에피소드로 목격하며 탄식이나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그러다 울컥하는 감정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주는 친근한 김지영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김지영을 드러내고 있을까?

세계일보

대표적인 여성 차별 언행과 상황들의 퍼레이드

소설보다는 양적으로 적어지고 질적으로 약해지긴 했으나, 영화는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어느새 많이 알려진 수많은 희롱과 학대 사례들 말이다.

남동생만 편애하는 지영의 할머니, 오빠들 뒷바라지 하느라 공부를 못한 지영의 엄마, 성 추행 당한 지영에게 범죄 신고나 위로 대신 몸가짐을 잘하라고 야단치는 지영의 아빠, 어렵게 취업했으나 회의 준비 하며 커피를 타는 여성 직원들, 그런 여성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여성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상사 등도 너무나 익숙한 인물들이다.

명절이나 생일 잔치 등 가족 행상 관련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는다. 양가 부모, 언니와 남동생, 시누이, 고모, 친할머니, 외할머니, 조카 등 여러 세대를 총 망라하는 지영의 가족 구성원들은 익숙한 대사와 행동으로 지영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기운 나게 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들과의 갈등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저 불쑥 불쑥 지영이가 겪게 되는 일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악인의 부재’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했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지영은 기운 빠져 있고, 주눅 들어 있고, 순간순간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착하다. 언뜻 보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지영의 일상 속에 타도 대상 악인도 없다.

지영을 힘들게 한 사람들은 바로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행동을 바꾸지 못해서 그렇지 애초에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영화는 전통, 예의, 상식 이라는 이름으로 꽤 오랫동안 당연시 되어온 생각과 말, 행동, 상황들을 특정 개인의 탓만으로 돌리지 않는다. 지영의 일상을 통해 문제제기를 할 뿐이다.

이상 증상까지 보이게 된 지영이의 현재 상황은 몇 사람이 사과하고, 행동을 바꾼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현실적이다.

세계일보

희망을 기대해

그렇다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비관적이거나 무기력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곳곳에서 사이다 발언자들이 등장하고, 공감과 연대의 모습이 보여 진다. ‘여성의 적은 여성’ 이라는 얘기를 무색하게 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남편 대현과 가족들을 비롯해 지영과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지영이 편이다.

게다가 지영이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지영의 남편 대현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지영의 이상 증상들을 지영도 알게 되고, 지영은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해, 희망을 기대하게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관객들을 당사자이자 목격자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직간접적으로 겪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막상 영화 속 지연의 일상으로 보다보면, 새삼 실감하게 된다. 영화 속 누군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도 된다. 지영과 지영 주변 사람들이 남 같지 않아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변도 둘러보게 되고 이러저러 생각도 하게 된다.

‘내가 의도치 않게 상처 준 사람은 없는지, 혹은 내 스스로 상처 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관람하길 추천한다. 아마 관람 후 나눌 얘기가 많아질 것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