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근·마·도라지·더덕…. 가을·겨울에는 땅의 기운을 머금은 뿌리채소가 인기다.
흔히 채소라면 녹황색 잎과 줄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영양소의 저장 창고는 뿌리다. 뿌리채소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은 물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물성 화학물질인 피토케미컬이 풍부해 체내에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는 데
제격이다. 다양한 뿌리 식품으로 차린 밥상으로 환절기 건강을 챙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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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부터 영양을 흡수해 잎과 열매에 전달하는 뿌리는 식물의 근원이다. 식물의 열매나 잎, 줄기보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영양소의 보고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강북삼성병원 김은미 영양팀장은 “뿌리채소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 무기질, 항산화 영양소가 풍부하다”며 “잎·줄기 채소보다 전분 함량이 높아 예전에는 일부 뿌리채소를 구황식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감자는 나트륨 배설, 고구마는 소화 도와
한국인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뿌리채소는 감자·고구마다. 감자는 유해 산소를 없애는 비타민C가 풍부해 ‘땅속의 사과’라고 불린다. 감자는 칼륨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이기도 하다. 나트륨 배설을 도와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열량에 비해 포만감이 커 다이어트에 활용하기도 한다. 감자는 햇빛에 노출되면 녹색으로 변한다. 이때 천연 독소인 솔라닌이 생성돼 감자의 아린 맛이 증가하고 구토·현기증·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 녹색으로 변한 부분과 감자 싹을 제거한 뒤 조리하는 게 안전하다. 고구마의 베타카로틴 성분은 체내의 활성산소를 없애주고 피부와 세포가 노화하는 것을 늦춘다. 생고구마를 자르면 배어 나오는 하얀 진액인 얄라핀은 장 활동을 촉진해 변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구마 껍질엔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 있어 함께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가스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무·생강·도라지는 환절기에 많이 찾는 뿌리채소다.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는 “한의학적으로 무는 폐와 관련이 깊다”며 “감기에 좋고 가래를 없애며 만성 기침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무에는 아밀라아제·디아스타제·옥시다아제 등 소화 효소가 풍부해 소화를 돕고 독소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천연 소화제이기도 하다. 무는 과육보다 껍질에 비타민C가 더 많이 들어 있어 무즙을 낼 땐 껍질을 벗기지 않도록 한다. 무는 생선과 궁합이 잘 맞는다. 생선 회·구이를 먹을 때 무를 갈아서 곁들이면 산성 식품인 생선을 중화하는 데 좋다.
향신료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는 생강은 의외로 응용 범위가 넓은 건강식품이다. 생강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 중 하나인 진저롤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몸속 염증 반응을 억제한다. 생강의 디아스타제와 단백질 분해 효소는 소화액 분비를 자극한다. 고 교수는 “코막힘·오한·두통·발열을 완화해 주는 효능이 있어 감기 증상에 많이 쓰이는 데다 장기간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효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생강은 차로 끓여 마시면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다. 기호에 따라 대추나 꿀을 함께 타 마셔도 된다.
도라지의 안토잔틴 성분은 폐나 기관지가 약한 사람에게 좋은데, 유해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균·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준다. 도라지는 특유의 쓰고 텁텁한 맛이 있다. 무침·볶음 요리나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강정으로 먹으면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
더덕은 소금물에 담갔다, 마는 날로 먹어
당근과 비트는 특유의 빛깔을 낸다. 주황색을 띠는 당근에는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다. 당근을 하루에 25g(중간 크기 당근 4분의 1개 분량) 먹으면 심혈관 질환 위험이 32%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베타카로틴이 혈관 내피세포의 염증을 줄여 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당근은 기름에 조리해 먹으면 영양 성분의 흡수율이 높아진다. 또 비타민C 산화 효소가 있어 식초나 기름을 약간 넣고 50도 이상으로 가열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 뒤 다른 식품과 조리할 것을 추천한다.
빨간색을 띠는 비트는 안토시아닌이라 불리는 피토케미컬을 함유하고 있으며 비타민C와 엽산이 풍부하다. 김은미 영양팀장은 “비트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효능과 지질 대사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비트는 식감과 색감이 뛰어나 샐러드를 만들 때 넣어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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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과 마는 원기 회복을 돕는 뿌리채소다. 더덕은 영양소가 풍부해 ‘산에서 나는 고기’로 불린다. 더덕의 사포닌 성분은 혈액순환과 원기 회복을 돕고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 기관지 점막을 강화해 폐 기능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좋은 더덕은 본연의 향이 진하고 매끈한 것이다. 껍질을 벗겨 소금물에 잠깐 담가 쓴맛을 뺀 뒤 두드려 조리하면 섬유질이 연해져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마는 한의학에서 ‘산약’으로 통한다. 고 교수는 “『동의보감』에선 허약하고 과로한 것을 보강하고 기력을 더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며 “소화력을 돕고 위산에 대한 보호 효과가 있어 소화기 증상에 특효를 보인다”고 했다. 마는 생으로 먹을 때 영양소를 최대로 섭취할 수 있다. 껍질을 깐 뒤 참기름·소금에 찍어 먹으면 된다. 마의 점액질 성분이 부담스럽다면 현미·콩과 갈아 죽으로 만들면 먹기 수월하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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