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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스타트업 57% 주 52시간 준비 안 됐다"... 규제 완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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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의료 한다더니 간호사 입회… "규제 샌드박스 속도⋅내용 아쉬워"
스타트업과 적극 협력하는 기업 순위 네이버⋅카카오⋅삼성⋅SK⋅롯데 순

"근무하기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엔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성과 내는 방식과 딱 맞는 것 같지 않습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22일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동향 패널 토론’ 자리에서 "모든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법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많은 스타트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가 스타트업의 혁신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스타트업은 업무 형태가 고정적이지 않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입해 빠르게 성과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경직된 근무시간 제한을 적용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체 스타트업의 57%가 주52시간 근무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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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왼쪽부터),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김재영 오픈서베이 팀장, 최윤경 매쉬업엔젤스 팀장, 원동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매니저가 22일 스타트업 생태계 동향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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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법을 지키려면 근로시간을 측정해야 하는데, 일부 스타트업의 경우 근태관리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스타트업도 삶의 질, 직원 복지를 위해 많이 고민한다. 다만, 청소·빨래 대신해 주고 간식 바를 마련하는 등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마다 성과를 보상하는 방식, 일하는 스타일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르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관한 우려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지속해서 제기돼 왔던 문제다. 다양한 업태를 가진 스타트업에 일률적인 정책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고, 자발적 동기 부여 문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5일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도 "주 52시간 근무제는 나를 위해 더 많이 일하겠다는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는 부작용이 있다. 다양성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스타트업이 닥쳐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공개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9’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답한 스타트업이 전체의 57%에 달했다. 근태관리 시스템이 있다고 응답한 스타트업은 전체의 24.2%에 불과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창업자 인식은 찬성, 중립, 반대가 각각 3분의 1씩으로 나뉘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된 내년 제도 적용 기업(50인 이상 300인 미만)이 7.4%로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도에 찬성한다고 답한 스타트업 창업자들 역시 스타트업의 유연하고 자율적인 근무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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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스타트업 창업자 인식 설문 조사. /오픈서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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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를 점수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 평균 점수는 73.4점으로 작년(68점)보다 개선됐다. 정부 역할에 대한 평가가 65.9점으로 작년(58.3점)보다 높았다. 창업자들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이슈로 규제 완화와 투자금 확보를 꼽았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법 규제 완화, 네거티브 규제 방식 도입이 절실하다고 응답한 창업자가 많았다. 스타트업과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대기업은 네이버, 카카오, 삼성, SK, 롯데 순으로 조사됐다.

이날 토론에선 규제 샌드박스 속도와 내용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데이터 3법이 1년 넘게 계류되고 있으며 모빌리티(이동 수단) 규제, 원격의료 등 헬스케어 규제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헬스케어 특구로 강원도가 지정돼 일부 원격 의료가 시행되고 있지만, 간호사가 반드시 환자 옆에 입회해야 하는 등 ‘무늬만 원격 의료’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정부 정책이 주도한다는 걸 키워드 추적을 통해 알 수 있었다"며 "미국의 경우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담론보다는 특정 기업, 개별 창업자에 관한 집중도가 높았다"고 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벤처투자금이 기록적으로 늘어나고 토스처럼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스타트업들이 늘어나면서 창업자들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분위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창업자들이 바라는 대로 규제를 완화하고 필요한 기업에 적절하게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한다면 스타트업의 성장이 계속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익 기자(wipar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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