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10월 무슨 일이 있었나
6개월만기 문제 알면서도 쉬쉬
라임 “DLF가 환매 중단 직격탄”
우리은행 “재판매 약속 없었다”
판매채널 통해 위험 전이될 수도
두 달 뒤인 10월 1일. 라임자산운용이 274억원 규모의 펀드 투자금액을 당장은 돌려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후 환매 중단액은 1조5000억원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투자 자산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금융 상품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에는 3가지 공통점이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모펀드’라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펀드 만기가 6개월에 불과한 상품이 있었다는 것. 세 번째는 우리은행이 주요 판매사였다는 것이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규모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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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상품의 연관성은 이것뿐이었을까. 지난 7월 30일. 라임자산운용은 우리은행 고위층에 ‘라임자산운용 Top2 밸런스 사모펀드 (우리은행) 재판매 요청서’라는 문건을 보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은행 상품팀의 강력한 요청으로, 저희는 우리은행에서 재판매를 전제로 한 6개월 만기형 펀드를 설정·판매했다. 만약 판매 재개가 안 된다면 펀드 상환이 불가능하며, 우리은행 및 라임자산운용은 엄청난 파문이 생길 수 있다. 타 채널 판매 중단(환매), 연쇄 펀드 환매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다.”
‘환매 중단 라임 펀드’판매사별 가입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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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이 이처럼 애타게 매달린 이유는 뭘까. 라임이 우리은행에서만 판매한 ‘라임 톱2 밸런스 6M’의 만기가 8월부터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설정된 뒤 두 달 만에 6700억원 어치나 팔렸다.
이 펀드는 만기 1년 이상의 사모사채 등에 투자하는 모펀드 ‘라임 플루토’를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환매 문제 등이 걸려 있어 만기를 6개월로 정한 건 이례적으로 여겨졌다. ‘재판매(롤오버)’에 대한 약속이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금 유입이 끊기고 환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자금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데 투자처는 제한적이라 수익률이 기존보다 떨어졌다. 이를 빌미로 “우리은행 상품팀이 재판매 합의를 없었던 일로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게 라임 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라임 톱2 밸런스 6M’ 펀드의 신규 판매를 4월 말 중단하는 대신 또 다른 6개월 만기의 ‘무역 금융펀드’를 팔았다.
라임자산운용 자금 유출입 현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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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타는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DLF 사태’였다. 사모펀드 문제로 고객들이 아우성인 상황에서 영업점에서는 또 다른 사모펀드인 ‘라임 펀드’를 재가입하라고 나설 수 없었다. 기존 가입 고객들은 만기 6개월이 지나자 예정대로 펀드 자금을 환매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8월 중순 라임이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게 되고 라임이 투자한 자산을 담보로 증권사가 대출을 해줬던 총수익스와프(TRS) 계약도 연장되지 않으며 유동성에 빨간불이 커졌다.
결국 10월 1일 라임은 우리은행을 통해 판매한 ‘라임 톱2 밸런스 6M’펀드 환매 요청분(274억원)을 지급할 수 없다고 공식화했다. 이후 라임 펀드를 판매한 모든 금융회사의 고객들이 대량으로 환매 요청에 나섰다. 환매 중단 금액은 1조5000억원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교롭게도 라임에서 펀드 환매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건 DLF 사태가 터진 8월 이후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지난 7월(2031억원)까지 라임에는 31개월 연속 자금이 순유입됐다. 그러다 DLF 사태가 터진 8월(-3820억원)과 9월(-5160억원)부터 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라임자산운용이 지난 7월 30일 우리은행 고위층에 전달한 ‘라임자산운용 Top2 밸런스 사모펀드 (우리은행) 재판매 요청서’ . 강광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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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DLF 사태’의 나비효과가 ‘라임 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금전과 법적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지며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라임의 핵심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6개월 뒤 재판매를 약속했던 게 DLF 사태로 무산되며 이번 사태가 시작됐다”며 “당시 우리은행의 요청을 네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들어준 걸 굉장히 후회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라임이 먼저 6개월짜리 상품을 제안해 상품선정위원회가 선택해 팔았을 뿐 재판매 약속을 한 사실이 없다”며 “라임 환매중단도 DLF 사태 탓이 아니라 라임의 ‘펀드 돌려막기’나 ‘전환사채(CB) 편법거래’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 영향이 컸으며 우리도 피해를 봤다”고 해명했다.
양측의 엇갈린 입장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라임 펀드 중 만기 6개월짜리를 판 곳은 우리은행뿐이라는 사실이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해당 펀드는 환매 리스크 때문에 6개월 만기는 불가능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6개월짜리 펀드’를 수수료 수익을 늘리려는 ‘꼼수’로 보는 시각이 많다. 1년 만기 상품을 6개월로 쪼개면 수수료가 두 배로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깜깜이’ 사모펀드 시장에서 판매 채널을 통한 펀드 간 위험 전이 가능성을 보여준 심각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에게 사모펀드 진입 장벽을 낮춰준 금융 당국의 책임이 크다”며 “제2, 제3의 라임 사태가 추가로 일어나면 한국 금융시장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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